다음달 8~18일 공연하는 1인극 ‘달의 목소리’의 배우 원영애 씨. 극단 독립극장 제공
다음달 8~18일 공연하는 1인극 ‘달의 목소리’의 배우 원영애 씨. 극단 독립극장 제공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던 독립운동가 정정화(1900~1991)의 삶이 무대에서 되살아난다. 다음달 8~18일 서울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달의 목소리’에서다.

정정화는 임시정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앞에 나서 싸우는 대신 뒤에서 정성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0여년간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1946년 귀국할 때까지 ‘임시정부의 안주인’으로 살았다. 시아버지 김가진을 비롯해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과 그의 가족들을 뒷바라지했다. 임정 요인 가운데 그가 지어준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는 회고록 《녹두꽃》에서 “내가 임시 망명정부에 가담해 항일 투사들과 생사 존몰(存沒)을 같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사사로운 일에서 비롯됐다”며 “주어지고 맡겨진 일을 모르는 체하고 내치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던 탓”이라고 했다.

‘달의 목소리’는 이 회고록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조명한다. 배우 원영애(극단 독립극장 대표)가 홀로 출연하는 1인극이다. 극은 원 대표가 《녹두꽃》을 읽어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설자는 어느새 역사 속의 정정화 선생이 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첫 아들 후동을 낳은 뒤 국내로 잠입했을 때, 자신을 여러 차례 숨겨줬던 집에서 박대를 당하자 그는 생각한다. 지금 임정에서는 수많은 요인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과연 이 독립은 누구를 위한 독립이며 투쟁일까. 조국이란 무엇일까. 광복 이후 미군정으로부터 멸시를 당할 때도, 6·25전쟁으로 남편과 생이별을 했을 때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때도 그는 그들을 기억했다.

결국 연극은 정정화 한 사람의 삶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진혼곡’이 된다. 원 대표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이름 한 자락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진 현실과 우리의 미래를 묻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극은 상징으로 가득한 무대와 다큐멘터리 영상을 활용해 그의 생애에 대한 극적인 판타지를 걷어내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무대를 연출한 구태환 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는 “독립운동가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대신 그들도 지금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제목은 《녹두꽃》의 한 대목에서 따 왔다. “달은 묵묵히 어둠을 비춘다. 가장 어둡다고 생각됐을 때 오히려 달은 세상을 더욱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날 비추고 있는 저 달은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묵묵히 우리 조국을 그리고 우리 역사를…. 달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듯 비추고 있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