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유럽에 드리우는 트럼프발 침체의 먹구름
지난 몇 년간 유럽은 여러 국제적 이슈로 흔들려 왔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이나 시리아 난민사태 등은 유럽의 정체성에 이미 상당한 타격을 줬다.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은 유럽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또 하나의 거대한 충격으로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성격만큼이나 그의 당선이 유럽 및 세계 정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전망은 분명 어두운 쪽에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와 연상돼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단어는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유럽 정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단기적으로 트럼프의 당선은 경제보다는 정치적 기류에 더 큰 영향을 줄 듯하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극우정당이 세를 키워나가는 상황에서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등 연이은 포퓰리스트의 승리는 유럽 전역으로 포퓰리즘 확대와 극우정당의 세력 확장을 더욱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치적 기류 변화는 앞으로 있을 유럽 여러 국가의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내달 4일에는 이탈리아 헌법 개정을 위한 선거가 있으며, 향후 1년 이내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에서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만약 이탈리아 선거에서 헌법 개정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좌파 성향인 마테오 렌치 총리의 사임과 극우정당 출신인 차기 총리 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자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불만 및 유럽 국가에 대한 군사비 분담 요구 또한 유럽 정세에 큰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며, 나아가 어렵게 독립을 쟁취한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붕괴 위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중국 멕시코 등과 무역 전쟁을 벌일 경우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신흥 시장이나 유럽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유럽은 2010년 이후 경제위기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혼란이 유발되면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 효율성이 약화되고 경제 전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유럽 중앙은행은 지난 목요일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벌써 두 번째 경고 메시지다. 특히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금리 상승이다. 트럼프 당선자의 성장정책, 투자자의 불안심리 등은 금리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금리 상승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같이 경제가 튼튼해 금리 상승이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을 동반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경제효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취약한 유럽 경제는 금리 상승을 감당할 체력이 부족하다. 글로벌 경제 체계에서 한쪽이 침체될 때 미국 혼자만 살아남아 계속 성장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증시가 그랬듯 트럼프 당선 후 뉴욕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강한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장의 움직임이 장기적 전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당선자의 친기업 정책에 기댄 단기적 반응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단기적 상승이 앞으로 다가올 크나큰 침체의 전조일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