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 컨트롤타워 복구 시급하다
글을 쓰기가 참 막막하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상당 부분 제거됐다고 믿었던 우리 정치의 적폐가 이렇게 민낯을 드러낸 상황에서 어떤 글인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무기력함이 엄습한다.

순수 경제학 이론은 일반균형이론과 부분균형이론으로 구분된다. 일반균형이론은 경제 변수 간 상호작용을 고려해 모든 변수를 내생적으로 결정한다. 반면 부분균형이론은 일정 변수는 외생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변수를 내생적으로 결정한다. 이론적 완성도나 일관성 면에서 일반균형이론이 더 선호되는 모형이지만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부분균형이론이 더 우수할 때가 많다. 문제는 부분균형의 경우 외생변수가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주어졌다고 가정하다 보니 그런 가정하에 도출된 해가 경제적으로 진정 최적의 해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제에서 정치란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대부분 순수경제학은 이를 반영하지 않거나 반영하더라도 일종의 제약조건으로 설정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정치 상황을 이론적으로 모형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껏 일반균형이라고 믿었던 이론이 한낱 부분균형에 불과할 수 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경제는 어떻게든 꾸려가야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국내외 많은 연구기관이 앞다퉈 내년 경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관마다 다르지만 전망치는 최저 2.2%에서 3.0% 사이다. 따라서 내년에도 3% 성장률을 기록하기는 난망할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 보자.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 하락세가 갤럭시노트7 사태로 인한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뚜렷한 반등을 기대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것이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상무장관으로 윌버 로스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성향 자체가 워낙 강성이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치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고 최근의 한류 금지론이 노골화되면서 대(對)중국 수출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소비의 경우 가계소득 증가가 부진한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로 추세적 하락세를 면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와 올해 그나마 성장을 견인했던 건설투자는 이제 막바지에 달한 것 같다. 올해 -3% 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내년에는 반등할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정치 상황에서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올해 2% 후반대로 예측되는 성장률을 민간 부문의 힘으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유일하게 기댈 언덕은 재정지출 확대밖에 없지만 국정이 올스톱돼 있는 현재의 국면이 타개되기 전까지는 이 역시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내년 성장률이 2% 중반 정도를 기록한다면 상당히 선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보면 성장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관리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난 2년간 정부는 부작용이 큰 부동산 부양책에 집중했고 이로 인해 가까스로 2% 후반대의 성장률을 견인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불어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소진시켜 왔으며 ‘트럼플레이션’ 기대로 시장금리가 폭등하면서 이제 발등의 불이 돼 버렸다. 부동산 위험은 크게 금리 위험과 가격하락 위험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금리 위험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하며 문제는 가격하락 위험 역시 언제 현실화될지 모른다.

이외에도 한계기업 문제 등 위험요인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이 타개될 때까지 정부는 가계위험 관리 및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위험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최소 이런 위기관리를 주도할 수 있는 경제 컨트롤타워를 복구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정치가 안정화될 때 빠르게 정상화를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