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원자재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예외는 금(金)이다. 물가 상승이 귀금속 가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거래가격이 뚝 떨어졌다.

◆인프라 투자 확대 소식에 구리값 껑충

28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구리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94%(113달러) 오른 t당 5935달러50센트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인 지난 8일(5044달러)과 비교하면 17.6% 올랐다. 구리와 같이 산업재로 쓰이는 아연과 납도 같은 기간 나란히 18.9%씩 뛰었다.

구리는 제조업 경기와 주가의 선행지표 역할을 해 ‘닥터 쿠퍼(copper·구리)’란 별명을 갖고 있다. 2011년 t당 1만달러가 넘던 구리 가격은 중국 경기 둔화와 유럽연합(EU) 재정위기 등을 거치면서 지난 1월15일 4310달러50센트까지 추락했다. 구리 가격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관련 지표들이 상승세로 돌아선 지난달부터다. 10월 기준 미국의 ISM 제조업지수(51.9)와 중국 국가통계국 제조업 PMI(51.2)가 기준선인 50을 넘어서면서 원자재 가격이 반등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취임 후 1조달러(약 1170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인프라 투자에 쓰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구리 시장의 ‘온기’를 ‘열기’로 바꿔놓았다. 구리는 전기, 전자기기뿐 아니라 철도 등 인프라 자재로도 널리 쓰인다. 이수정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구리는 트럼프 당선자와 궁합이 잘 맞는 자산”이라며 “인프라 수요가 늘수록, 물가가 오를수록 구리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닥 추락했던 구리·아연 초강세
◆트럼프 수혜 자산이라던 금은 비실비실

금의 운명은 정반대다. 지난 8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온스당 1273달러49센트이던 금 가격은 28일 1190달러60센트(-6.5%)까지 떨어졌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져 금값이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자율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가격이 하락하는 금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설명한다. 물가 상승에 대응해 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선 금값이 오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은 이자를 받지 못하는 자산”이라며 “시중은행 등에서 ‘괜찮은 금리를 줄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면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곡물은 공급과잉 현상 탓에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는 라니냐(적도 부근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균 대비 0.5도 낮은 경우 발생하는 기상 현상)의 강도가 약해 곡물 작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향방은 이번주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강유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유의 공급과잉 국면이 끝나가는 분위기”라며 “이번주 열리는 OPEC 정례회의에서 산유량 감산 결정까지 내려지면 원유 가격이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