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지만 정작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 개편 수혜주로 꼽혀온 종목들은 힘을 내지 못했다. 인적분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이 없어 그간 주가를 끌어올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배구조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당분간은 펀더멘털(기초체력) 중심으로 주가가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산과 당장 합병 없다"…삼성물산 8% 급락, 삼성전자 보합
◆힘 빠진 지배구조 개편 수혜주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수혜를 볼 종목으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을 꼽아왔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사업 재평가로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높은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만큼 향후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합쳐 통합 지주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2%) 활용 가능성 때문에 주목받았다. 금융지주회사로 가려면 금산분리 규제 로 인해 5%를 초과하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은 처분해야 해서다.

29일 삼성전자는 장중 내내 강보합세를 보이다 결국 전날과 같은 167만7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발표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주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삼성생명은 11만5500원으로 0.86% 하락했다. 삼성물산은 8.63% 급락한 12만7000원에 마쳤다. 개인 투자자들(1264억원)이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외국인(345억원)과 기관(1018억원)의 매도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난달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의 주주제안 이후 지배구조 개편 기대라는 상승 재료가 이날 삼성전자의 공식 발표로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은 없다”는 삼성전자의 이날 발표도 삼성물산 주가엔 악재로 받아들여졌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물산 주가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타격도 컸다”며 “앞으로의 주가는 실적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삼성물산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2.79%), 물류와 정보기술(IT) 서비스로 사업 분할이 예상되는 삼성SDS(-3.55%)의 하락폭도 컸다. 삼성카드(-1.17%) 삼성화재(0%) 삼성증권(0%) 등 금융계열사들 역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의미 있는 방향 제시”

‘6개월간 검토’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관련 종목들의 주가도 단기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 전망과 배당 확대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부사장은 “올해 4조원 배당은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규모”라며 “장기 투자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도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업황이 밝은 데다 삼성전자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를 대규모(1918억원)로 사들였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본격화하면 사업회사의 성장성이 부각돼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오너 일가는 보유한 사업회사 주식을 투자회사 주식과 교환해 지배력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정현/최만수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