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트럼프를 알아야 반(半)이라도 챙긴다
뉴욕 맨해튼 5번가 725 트럼프타워 67층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에는 세 개의 일정표가 걸려 있다고 한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일까지 일정표고, 나머지 두 개는 대선 후부터 취임 때까지와 취임 후부터 100일까지의 일정표다. 지난 9월 이 집무실을 방문한 지인(知人)은 트럼프가 그때부터 취임 후 100일 일정을 챙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사실 트럼프는 요즘 미국인들을 많이 놀라게 한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대선을 승리로 장식했고, 선거 후엔 180도 달라진 매너와 언어로 ‘그때 트럼프 맞아’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선거가 끝나자 화합을 강조하고, 경쟁자를 포용하고, 인사 정보를 흘려 여론을 떠보고 있다. ‘정치 문외한’ 트럼프로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노련한 정치 행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진짜 트럼프는 누구일까. 대선 때 본 ‘망나니’ ‘막말 대장’ 트럼프일까, 달라진 트럼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선거기간에 본 트럼프는 빨리 잊는 게 좋겠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트럼프는 멕시코인들을 강간범으로 욕하고, 미스 유니버스와 언쟁을 벌이고, 버스 안에서 음담패설로 킥킥거리던 트럼프가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 이전의 기업인 트럼프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협상가이고, 한 번 잡은 기회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냉혹한 승부사’다. 대통령이 된 것만 해도 그렇다. 트럼프가 대통령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36년 전인 1980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34세인 트럼프는 언론인 로나 배럿과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지금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지만 만약 출마한다면 TV에서 멍청한 웃음만 짓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개혁당 후보로 대선에 첫발을 들였고, 2004년과 2012년에도 출마를 저울질했다. 이번엔 3년 전 100만달러를 들여 여론조사를 한 뒤 확신을 갖고 출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집요하고 치밀하게 백악관 주인이 된 것이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동업자를 설득하기 위해 공사장에 수많은 장비를 갖다놓고 일이 진척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계약서에 도장 찍게 한 일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허위 계약서를 진짜인 것처럼 들이미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트럼프는 그 뻔뻔함 그대로 선거기간 중 경쟁자들은 물론 여성·히스패닉·무슬림들과 ‘추잡한’ 싸움을 벌이면서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약속한 게 ‘미국 우선주의’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질서를 바꾸겠다고 호언했다. “거래를 거래 자체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트럼프는 지금 뉴욕 집무실에서 한국에 내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계산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분명 한국에 벅찬 상대다. 그래도 트럼프를 알면 반(半)이라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모르고 자신도 없으니 벌써부터 “미국이 (방위비를) 더 내라면 낼 수밖에 없다”(장명진 방위사업청장)는 헛발질부터 한다. 한국은 이제 조기 대선 국면이다. 이왕이면 이념에 사로잡힌 허깨비 정치인보다 트럼프 아니라 그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는 파이터가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