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에 유망한 투자처로 꼽히던 부실채권(NPL)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갈 곳 없는 뭉칫돈이 몰리면서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NPL 시장에 수천억원을 투자한 행정공제회를 비롯해 주요 기관투자가도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부실채권 가격이 치솟으면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치솟는 NPL 몸값

저금리 시대 유망 투자처라더니…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달 29일 KEB하나은행의 NPL 870억원어치(대출채권 원금 기준)를 835억원가량에 사들였다. 대출채권 원금 대비 96%(낙찰률)에 달하는 가격에 NPL을 사들였다는 얘기다. KB자산운용도 원금의 93% 수준(810억원) 입찰가격을 제시했지만 이지스자산운용에 밀렸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달 30일 수협은행 NPL 465억원어치를 낙찰률 95% 수준 가격(약 442억원)으로 사들이기도 했다. 업계는 올 들어 3분기까지 NPL 낙찰률이 평균 80% 선에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말 낙찰률이 평균 90% 중후반대까지 치솟았다.

NPL 투자자들은 대출채권의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 등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원금보다 저렴하게 사들일수록 투자 수익률은 높아지는 구조다. 최근 낙찰률이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NPL 투자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NPL을 사들이기 위한 자금 조달과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며 “낙찰률이 90% 중후반이라면 실질적인 수익률은 시중은행 예금 금리와 비슷한 1% 선까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운용사, 제 살 깎아먹기 경쟁

업계에서는 NPL 연계 상품을 내놓는 자산운용사들이 NPL 시장을 ‘레드오션’(경쟁만 치열하고 이익은 얻기 힘든 시장)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올해 10월 3400억원 규모의 첫 NPL 펀드를 설정했다.

KB자산운용도 비슷한 시기 2200억원 규모로 세 번째 NPL 펀드를 조성했다. 코레이트자산운용(전 마이애셋자산운용)도 조만간 NPL 펀드 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펀드 자금을 소진해야 하는 운용사들이 밀어내기식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펀드에 투자한 기관투자가의 수익률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NPL에 과감하게 투자한 행정공제회의 수익률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행정공제회는 이지스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이 조성한 NPL 펀드에 700억원씩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NPL 시장 규모가 연 5조~6조원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수요만 늘고 있다”며 “기관투자가들이 NPL로 재미를 보기 힘든 여건”이라고 말했다.

■부실채권(NPL)

non performing loan. 금융회사가 기업과 개인에게 빌려줬지만 3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하지 않는 대출채권으로 공장, 토지 등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다. 금융회사는 경영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대출 원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투자자에게 매각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