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는 장소는 미국 뉴욕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장이었다. 오준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대사(61·사진)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뒤 마지막 공식 발언을 했다.

안보리 비(非)이사국으로는 유일하게 발언권을 얻은 오 대사는 “북한이 세계 비핵화 체제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며 국제사회의 의지가 담긴 결의안을 환영했다. 이어 “지금까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해 투자한 돈이 10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돈은 북한 주민들이 먹을 식량 1년 치를 살 수 있는 액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은 무기를 먹을 필요가 없다.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북한 정권이 주민의 생계를 내팽개치고 무기 개발에 나서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2013년 9월 부임한 오 대사는 유엔에서 압박과 제재 일변도의 북핵 문제를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로 확대해 국제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12월 북한 인권상황이 안보리에서 처음 다뤄졌을 때 “북한 주민이 우리에게는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는 연설문으로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날도 그는 북핵 문제가 한국 민족에 특수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TV를 통해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한 집안에 있는 형제가 허공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있고, 헐벗고 공포에 떨고 있는 그의 자식들이 울부짖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비유했다.

오 대사는 뉴욕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너무 많이 나갔다”며 “이제는 과거와 달리 북한 핵문제 해결이 통일을 위한 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가 외교적 해결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핵비확산 체제를 유지하고, 동아시아 지역안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남북이 대화와 협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비군사적 제재조치가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여기까지 온 제재를 후퇴시킬 수 있는 정부나 사람은 없다. 결국 북한이 받는 고통은 계속해서 누적될 수밖에 없다”며 “북한도 어느 시점에 ‘결단의 순간’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대사는 이날 3년3개월간의 유엔대사 임기를 마치고 뉴욕을 떠났다. 내년 1월 중순 퇴직한 뒤 북한과 개발·장애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외교부 후배들에게 “모두가 다자외교 능력을 갖춰 ‘포스트 반(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대사 후임에는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임명됐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