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논점과 관점] 87 체제 vs 16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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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1987년 4·13 호헌(護憲)부터 6·29 선언까지는 민주화 운동이 횃불처럼 타오른 시기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계기로 정치는 물론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조차 구분 못하던 권위주의적 독재에서 산업화된 민주국가로 변모했다. 이른바 ‘87체제’다.
하지만 87체제는 ‘새 세상’이 결코 아니었다. 직선제만 쟁취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뒤의 현실은 억눌렸던 욕구 분출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었다. OECD에 가입하면 선진국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력도 없이 버거운 환율을 유지하다 외환위기도 맞았다. 지금까지 6명의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혹시나 1년차, 의욕과잉 2년차, 삐걱대는 3년차, 주변 비리 4년차, 식물 5년차. 예외가 없다.
직선제 쟁취서 대통령 탄핵으로
한 세대가 흐른 2016년 지금은 훗날 ‘16체제’로 기록될 것이다. 깜냥도 안 되는 최순실 일당의 국정 개입과 대통령의 방조에 분노했다. 주말마다 광장에서 하야·탄핵을 외친 게 벌써 5주가 지났다. 운동권 용어를 빌리면 ‘체제 모순이 극에 달한 상태’다.
‘16체제’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펄펄 끓는 광장의 에너지로 기존 체제를 깰 순 있어도 더 나은 대안을 만들진 못한다. 1987년엔 거악(巨惡)이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대통령만 끌어내리면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이다. 광장의 외침엔 하야만 있고 그 이후가 없다.
그 이후는 좋든 싫든 정치의 몫이다. 문제는 한국 정치가 그럴 수준이 되느냐는 사실이다. 퇴진운동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나온 게 벌써 21년 전이다. 그간 휴대폰, 컬러TV, 자동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대중교통, 통관, 민원처리 등의 행정시스템도 널리 수출된다. 그러나 질 낮은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어디 팔 데도 없다. ‘4류 정치’가 광장의 눈치를 보면서 새 체제를 이끈다면 미래 세대에겐 크나 큰 불행이다.
영국의 길, 프랑스의 길 기로에
역사는 시대의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프랑스혁명(1789년)의 성난 민중은 광장의 단두대에 루이 16세를 올렸지만 로베스피에르도 올렸다. 나폴레옹에게도 환호했다. 40여년이 흘러도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는 치워지지 않았다. 파리코뮌(1871년)까지 근 100년간 혼란을 겪었다. 반면 영국은 명예혁명(1688년) 이후 고양된 시민의식과 경제적 자유를 동력으로 산업혁명을 완성했다. 어떤 길을 교훈 삼을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민주주의는 법치와 대의정치로 세워지지만 한국에선 둘 다 제대로 작동해 본 적이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이익집단들의 지대 추구가 만연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유와 책임이 체화된 시민의식이 전제돼야만 한다. 나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중요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시민이 된다. 민주화에 치중한 87체제는 자유에 대한 각성이 빠져 있다.
‘16체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진 지난(至難)한 과정이 기다린다. 광장의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저성장, 고령화, 일자리에다 북핵, 세계 정세, 4차 산업혁명 등이 물밀듯 닥쳐올 것이다. 이를 극복할 역량을 갖추느냐에 미래가 달렸다. 헌데 그럴 만한 리더십이 전혀 안 보인다. 한국인의 위기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하지만 87체제는 ‘새 세상’이 결코 아니었다. 직선제만 쟁취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뒤의 현실은 억눌렸던 욕구 분출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었다. OECD에 가입하면 선진국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력도 없이 버거운 환율을 유지하다 외환위기도 맞았다. 지금까지 6명의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혹시나 1년차, 의욕과잉 2년차, 삐걱대는 3년차, 주변 비리 4년차, 식물 5년차. 예외가 없다.
직선제 쟁취서 대통령 탄핵으로
한 세대가 흐른 2016년 지금은 훗날 ‘16체제’로 기록될 것이다. 깜냥도 안 되는 최순실 일당의 국정 개입과 대통령의 방조에 분노했다. 주말마다 광장에서 하야·탄핵을 외친 게 벌써 5주가 지났다. 운동권 용어를 빌리면 ‘체제 모순이 극에 달한 상태’다.
‘16체제’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펄펄 끓는 광장의 에너지로 기존 체제를 깰 순 있어도 더 나은 대안을 만들진 못한다. 1987년엔 거악(巨惡)이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대통령만 끌어내리면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이다. 광장의 외침엔 하야만 있고 그 이후가 없다.
그 이후는 좋든 싫든 정치의 몫이다. 문제는 한국 정치가 그럴 수준이 되느냐는 사실이다. 퇴진운동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나온 게 벌써 21년 전이다. 그간 휴대폰, 컬러TV, 자동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대중교통, 통관, 민원처리 등의 행정시스템도 널리 수출된다. 그러나 질 낮은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어디 팔 데도 없다. ‘4류 정치’가 광장의 눈치를 보면서 새 체제를 이끈다면 미래 세대에겐 크나 큰 불행이다.
영국의 길, 프랑스의 길 기로에
역사는 시대의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프랑스혁명(1789년)의 성난 민중은 광장의 단두대에 루이 16세를 올렸지만 로베스피에르도 올렸다. 나폴레옹에게도 환호했다. 40여년이 흘러도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는 치워지지 않았다. 파리코뮌(1871년)까지 근 100년간 혼란을 겪었다. 반면 영국은 명예혁명(1688년) 이후 고양된 시민의식과 경제적 자유를 동력으로 산업혁명을 완성했다. 어떤 길을 교훈 삼을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민주주의는 법치와 대의정치로 세워지지만 한국에선 둘 다 제대로 작동해 본 적이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이익집단들의 지대 추구가 만연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유와 책임이 체화된 시민의식이 전제돼야만 한다. 나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중요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시민이 된다. 민주화에 치중한 87체제는 자유에 대한 각성이 빠져 있다.
‘16체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진 지난(至難)한 과정이 기다린다. 광장의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저성장, 고령화, 일자리에다 북핵, 세계 정세, 4차 산업혁명 등이 물밀듯 닥쳐올 것이다. 이를 극복할 역량을 갖추느냐에 미래가 달렸다. 헌데 그럴 만한 리더십이 전혀 안 보인다. 한국인의 위기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