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재능 접목해 공연문화 확산"
1986년 12월19일, MBC 대학가요제 본선이 열린 날. 열아홉 살 대학 새내기 이정석(사진)은 본선에 오른 다른 팀과 함께 버스를 타고 경연장인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 환성이 터졌다. 창밖에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정석에게 모였다. 그가 조금 뒤에 부를 노래를 알고 있어서였다.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첫눈의 힘을 받았을까. 이정석은 직접 작곡한 ‘첫눈이 온다구요’를 특유의 감성과 비음 섞인 미성으로 멋들어지게 불러 금상을 차지했다. 가수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중림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첫눈’ 얘기부터 꺼냈다.

“엊그제처럼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첫눈과 인연이 깊어요. 이듬해(1987년) ‘사랑하기에’로 KBS ‘가요 톱10’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받은 날에도 첫눈이 왔고…. 제가 결혼한 날에도 첫눈이 내렸어요.”

이정석이 가수 인생 30년을 기념해 특별한 공연을 연다. 오는 23, 24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이정석 데뷔 30주년 기념 기부 콘서트’다. 그와 함께 ‘돌(석) 셋’으로 불리는 이규석과 전원석을 비롯해 박남정, 전유나, 이덕진 등 1980~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이정석과 친구들’이 무대에 선다.

“기념 공연은 생각도 못했는데, 제가 초기부터 참여해온 페이스북 기반 공유 기부 플랫폼인 ‘쉐어앤케어’에서 먼저 제의가 왔어요. 30주년 기념 공연을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나눔과 희망의 무대로 열자고요.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공연수익금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음악 재능을 기부하는 ‘드림트리’와 소아암 말기 환자들을 돕는 ‘모나콘’에 전액 기부한다. 기부 상세 내역은 쉐어앤케어 사이트에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공연 콘셉트는 ‘추억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토크 콘서트식으로 동료 가수들과 이야기를 하고 무대 영상을 보며 옛 시절과 추억을 소환하는 무대로 꾸밀 생각입니다. 트로트 메들리, 캠프송 메들리도 들려드리려고요. 관객들이 함께 따라 부르며 추억에 젖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프로그램 구성, 출연진 섭외, 공연장 점검 등 공연 준비를 혼자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선과 기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이전보다 좋아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친구들’은 흔쾌히 무보수로 출연하기로 했고, 세션맨들도 ‘반값’에 도와주겠다고 했다. 소월아트홀은 대관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악기 제조사인 야마하는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했다.

“연말은 행사가 많아서 가수나 뮤지션에게 이른바 ‘대목’인데도 선뜻 도와주겠다고 해 고마웠어요. 관심은 많은데 기부나 자선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콘서트를 계속 열어 기부와 재능을 접목한 공연 문화가 확산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