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는 '판도라'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작품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변성현 기자
문정희는 '판도라'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작품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변성현 기자
배우 문정희(40)는 박정우 감독의 새 영화 '판도라' 개봉에도 여느 때처럼 기뻐하지 못했다. 영화 흥행에 대한 기대보다 시국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상태였다면 새 영화 개봉에 참 들떠있었을 것 같아요.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죠."

문정희가 이번 영화 '판도라'를 선택한 것 역시 배우이자 국민으로서의 양심이다.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이 영화를 통해 원전에 대한 위험성과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가져오는 혼돈을 알리고 싶었다.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잖아요. 원전에 대해 분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정보 제공은 필요하다고 봐요. 이 영화를 통해 원전과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재에 따른 위험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HEI: 뷰] '판도라' 문정희, 배우이자 국민으로 촛불 들다
'판도라'는 월촌리라는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한별 원자력 발전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원전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는 재혁(김남길)은 매일이 지옥이다. 아버지와 친형이 원전에서 일하다 피폭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혁이 월촌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홀어머니 석 여사(김영애)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형의 부인 정혜(문정희), 조카 민재 때문이다.

이 가족은 방사능의 위험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지만 발전소의 위험성에 '그럴 리 없다'고 손사래 친다.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진도 6.0의 지진에 원전은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출연진이 많은 재난 영화의 특성상 문정희 분량은 매우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만족했다.

"얼굴 한 번 나오지 못한 배우들이 많아요. 정인기 선배도 백도빈 배우도 있었죠. 소방대원 헬멧을 쓰니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힘들게 애써준 분들이 참 많아요. '내 영화'가 아니라 '우리 영화'였습니다."

문정희는 극 중 '원전'을 철석같이 믿고 사는 시어머니 석 여사와 갈등, 화해를 통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김영애와 문정희라는 원숙한 조합은 극의 몰입도를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혜는 남편을 피폭으로 잃었지만 구시대적인 시어머니에게 주눅 들지 않았어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지만 (가족을) 두고 갈 수는 없죠. 원전이 터지는 과정에서 쌓여있던 것이 터지게 되지만요."
영화 '판도라' 스틸컷 /사진=NEW
영화 '판도라' 스틸컷 /사진=NEW
영화는 한국인의 정서를 담았다. 남녀노소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다. 세련되지 못한 신파라는 지적도 있다. 문정희는 이런 지적에 개의치 않는다.

"'판도라'는 신파가 맞습니다. 가족애 코드가 없었다면 다큐멘터리가 됐을 거예요. 박정우 감독은 신파 코드를 잘 안 하시는 분이죠. 기왕이면 확실하게 닿아보자 했어요. 감독님의 신뢰와 믿음에 응하고 싶었습니다. 제 몫이었는 걸요."

월촌리 주민들의 대피를 그린 고속도로신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재난이 벌어졌을 때 대피 매뉴얼에 약한 국민이 어떻게 되는지 현실감 있게 보여줘야 했어요. 통제하는 사람은 없고, 남보다 빨리 이동하기 위해 차를 버리고 걸었죠. '연가시'에서 고생해봐서 아는데, 재난 영화는 나만 잘해도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현장 자체가 재난이었습니다."

문정희는 이번 영화를 알리면서 "완전한 원전은 없다"는 식의 소신 발언도 했다. 공인으로서 이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응원하는 대중도 많지만 좋지 않은 시선도 분명히 있습니다.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죠. 소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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