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러시아 소치에서 에너지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CEO(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소치AP연합뉴스
2011년 러시아 소치에서 에너지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CEO(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소치AP연합뉴스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에 미국 최대 석유회사 엑슨모빌의 렉스 틸러슨 최고경영자(CEO·64)가 공식 내정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이 13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틸러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한 인물이다.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 갈등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트럼프 당선자가 이번 인사로 ‘친(親)러-반(反)중’ 외교 노선을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텍사스주(州) 출신인 틸러슨은 1975년 엑슨모빌에 입사해 2006년 CEO에 올랐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엑슨모빌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의 합작사업 등을 시작하며 러시아에 적극 진출했다. 러시아의 건강 및 사회보장 사업에도 많은 돈을 기부했다. 푸틴 대통령과 17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틸러슨은 2012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Order of Friendship)’을 받았다.

틸러슨은 다른 외국 정상과도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엑슨모빌은 세계 50개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공직 경험이 전무하고 러시아와 너무 가깝다는 점 때문에 상원 인준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견제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 세계가 2014년부터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나설 때도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최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돕기 위해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틸러슨 지명 시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매케인 의원(애리조나)과 린지 그레이엄 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 등 공화당 의원들이 인준 반대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틸러슨이 10명에 가까운 국무장관 후보군 중에 급부상한 데는 트럼프 당선자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 내정자의 강력한 추천이 작용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당선자가 ‘하나의 중국’ 원칙 무력화를 시사하며 중국과의 긴장 관계를 불사하면서 친(親)러시아 성향의 국무장관을 기용하는 것은 대만뿐 아니라 러시아도 중국과의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당선자는 이날 차기 행정부에서 재무·상무장관과 함께 미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2인자인 게리 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56)를 지명했다.

NEC 위원장은 한국의 청와대 경제수석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하고 각 경제부처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콘은 1990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채권과 상품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