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항운·버스업계 노조 고질적 채용비리 '단골 수사대상'
협박, 공장가동 정지 등 도 넘은 횡포…"도덕성으로 국민공감 얻어야"

노동조합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거나 권한 남용에 취해 '갑질'을 행사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자 권리를 확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노조가 온갖 비리로 얼룩져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 겉으로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만 실제는 약자 위에 군림하며 자기 배만 불렸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부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조에 더 높은 기준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절실한 자기반성과 개선 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돈 주면 일자리 줄게" 채용장사하는 대형 노조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절대적인 노조일수록 부정과 불법이 끼어들기 쉽다.

인천지검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 노조 지부장 A씨를 지난달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엠 1차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채용 과정에 개입해 2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노조 지부장에 당선된 A씨는 지부장이 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채용비리를 저지른 셈이다.

올해 6월부터 한국지엠의 채용비리를 수사한 검찰은 최근까지 노사 관계자 13명(8명 구속)을 재판에 넘겼다.

이 가운데 사측 관계자는 2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전·현직 노조 간부나 대의원이다.

검찰은 이 회사의 정규직 채용비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자수 기간'까지 운영하고 있다.

수사 인력 등의 문제로 2012년 이후 정규직으로 발탁된 470여 명을 전수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이달 31일까지 자수하는 직원은 기소나 입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생산업체 노조의 대규모 채용비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당시 울산지검은 취업을 미끼로 금품을 받은 현대자동차 노조 전·현직 간부와 조합원 등 16명을 적발했다.

10여 전 구태와 불법이 판박이처럼 오늘날 재현된 셈이다.

노조 권한이 절대적인 항운노조의 비리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법원은 올해 9월 취업 비리로 복역하다 가석방된 후 다시 똑같은 비리를 저지른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기소된 부산항운노조 지부장 B씨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2억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항업지부 반장이나 지부장을 맡아 조합원 인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총 9차례에 걸쳐 2천만∼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0년에도 같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형을 살다 가석방됐지만, 다시 항운노조로 복귀해 똑같은 비리를 저질렀다.

부산항운노조의 채용비리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됐으나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 노조는 2013년부터 비리 조합원의 피선거권과 복직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지난해에는 54년간 독점해온 노무인력 공급권을 스스로 내놓는 등 '비리 노조' 꼬리표를 끊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금품 받고 개인 밭일까지 시켜…버스회사 노조, 무소불위 권한

최근에는 버스업체 노조의 갑질이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등 혐의로 버스업체 4곳의 전·현직 노조지부장 4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버스업체 임직원 2명과 브로커 5명도 함께 적발됐다.

이들은 2010년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버스기사로 취업을 원하는 39명으로부터 3억9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도의 한 버스업체 인사 책임자, 노조위원장, 노조간부 등 3명도 배임수재와 강요 등 혐의로 지난달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계약직 버스기사에게 "계약을 연장하려면 우리에게 잘 보여라"고 협박, 약 10년간 1천710만원을 받아 나눠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노조위원장은 인사권을 악용, 기사들이 근무외 시간에 자신의 밭에서 일하도록 부리기도 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7월 버스기사 정규직 채용과 근로계약 연장을 대가로 금품을 챙긴 버스업체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신규 채용이나 재계약을 추천할 수 있는 노조 권한을 빌미로 2011∼2015년 1천900만원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노조간부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채용이나 재계약이 안 된다는 진술까지 있었다"면서 업계에 채용비리가 만연했음을 알렸다.

실제로 버스업계에는 기사를 공개적으로 채용하기보다는 노조 대표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회사가 받아들이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간부들은 채용 후보자 추천권 외에도 징계요구권, 장학금 지급 추천권, 배차권 등 막강한 권한이 있어 노조원들에게 갑질이 가능한 것이다.

◇ 협박, 채용 대물림도…"국민공감 얻을 때 영향력 유지"

노조의 갑질은 주로 채용을 빌미로 이뤄질 때가 많지만,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천지법은 9월 한국지엠 노조 전 지부장과 후생실장 등 2명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각각 3억6천500만원과 6천334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이들은 2013∼2015년 노조간부로 재임할 당시 각종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고 납품 선정을 도와준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남부지법은 6월 공동공갈, 보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위원장과 간부에게 각각 징역 3년과 2년을 선고했다.

다른 간부 13명도 징역 8개월∼1년 6월에 집행유예 2∼3년을 받는 등 노조 집행부 간부 15명이 무더기로 징역형을 받았다.

이들은 2013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3곳과 건설사 10곳을 상대로 "노조원을 크레인 기사로 고용하라"고 협박,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건설현장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했고, 심지어 타워크레인 업체 운영자가 다니는 교회나 건설사가 운영하는 골프장 등지에서도 집회를 열어 압박을 이어갔다.

올해 5월에는 대법원이 공장가동을 멈춘 혐의로 기소된 현대차 노조 조합원 4명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했다.

이들은 2012년 11∼12월 비정규직인 사내하청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대체인력 투입을 막으려고 4차례에 걸쳐 현대차 울산1공장 생산라인을 중단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대체인력 신분을 확인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라인을 멈췄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권한이 없는 사람이 급박하게 라인 정지 조처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2천769곳의 단체협약 실태를 조사해 올해 3월 발표한 결과에는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발표에 따르면 한 대기업은 정년퇴직자의 요청이 있으면 회사가 그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도록 단체협약에 규정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릴 만한 일자리 대물림이다.

또 직원을 채용할 때 기준이 적합하고 조건이 동일한 지원자일 경우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을 우선 채용하도록 단체협약에 정한 기업도 있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7일 "노동조합 영향력의 근저에는 조합원뿐 아니라 국민의 공감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최근 노조가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일부 노조가 스스로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성을 담보해야 노조가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대 변화에 맞게 노조도 도덕적 기준과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hk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