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날씨처럼 쓸쓸한 선율 담아냈어요"
비가 곧장 쏟아질 것처럼 짙은 어둠이 깔리고 바람이 분다. 깊게 숨겨뒀던 고독이 극대화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8·사진)이 영국에 있을 때 그리고 비올라 음악을 들을 때 공통으로 느낀 감정이다. 영국 날씨와 비올라의 중저음은 그렇게 닮았다.

용재 오닐이 이런 감정을 한데 담아 19일 ‘브리티시 비올라(British Viola)’ 앨범을 발매했다. 4년 만에 낸 8집 정규 앨범으로, 윌리엄 월튼 등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을 수록했다. 용재 오닐은 이날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비올라곡은 유독 영국에서 많이 작곡됐다”며 “안개와 비가 많은 영국의 미스터리하고 쓸쓸한 기운과 비올라의 소리가 잘 맞아 영국 곡들로 앨범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앨범은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을 통해 발매됐다. 영국 작곡가의 곡으로 앨범을 채운 것은 그가 비올라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도 관련 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한 용재 오닐은 열세 살 때 한 선생님이 준 앨범에서 비올라곡을 들었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렸어요. 어둡고 우울하고 부조화음도 들어 있었죠.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그 안에 엄청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때 들었던 곡이 윌리엄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 a단조’다. 이번 앨범에서 유일한 실황 녹음이다. 용재 오닐이 2013년 앤드루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연주 실황을 음반에 담았다. 이 작품은 월튼이 연인 크리스타벨에게 헌정한 것으로 슬픔과 우울함이 깃든 두 사람의 관계를 담았다. “제가 최초로 들었던 비올라곡이자 저를 비올리스트로 이끈 곡이 수록돼 감회가 남다릅니다.”

"영국 날씨처럼 쓸쓸한 선율 담아냈어요"
이 곡과 함께 프랑크 브리지, 요크 보웬, 벤저민 브리튼 등이 작곡한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 앨범에 담겨 있다. 피아노는 용재 오닐과 함께 4인조 클래식 그룹 ‘앙상블 디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스티븐 린이 맡았다.

그는 이날 클래식 공연장이 아니라 클럽에서 쇼케이스를 여는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오후 8시부터 서울 논현로 클럽 옥타곤에서 ‘옐로우 라운지 서울’ 무대를 열고 앨범에 담긴 곡을 연주했다.

용재 오닐은 “전형적인 클래식 공연장은 아니지만 뉴욕에 있을 때 다운타운에서 실험적인 공연을 했던 추억을 떠올렸다”며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많은 사람이 같이 듣고 그 여정을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강조했다.

용재 오닐은 새해를 전국 투어 독주회로 시작한다. 내년 2월14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한 달여간 인천, 울산, 경기 성남, 부산, 대구, 경기 화성을 오간다. 1부에서는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로 구성, 영국 정통 비올라곡의 매력을 선보인다. 2부에선 피아졸라의 ‘탱고발레’, 빌라-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5번’ 등으로 낭만적인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