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허니문
허니문(honeymoon)이라면 신혼 단꿈부터 떠올리게 된다. ‘꿀같이 달콤한 달’이니 말 그대로 밀월(蜜月)이다. 원래는 신혼부부가 한 달간 벌꿀주를 마시는 스칸디나비아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콤한 내막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엔 신부 납치라는 고대 혼인사의 단면이 투영돼 있다.

옛 노르웨이에서는 총각이 처녀를 납치해서 한동안 숨겨두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처녀 아버지가 딸을 찾는 걸 포기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부족과 함께 지냈는데, 이때 숨어있는 남녀에게 꿀로 만든 술을 주며 결혼을 종용(?)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업이나 업무를 시작할 때의 초창기 협력 기간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됐다. 주식 시장의 ‘허니문 랠리’도 마찬가지다. 새 체제 출범에 따라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가가 단기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신혼의 단꿈에 빗댄 것이다.

정치 분야의 ‘허니문 효과’도 그렇다.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 역시 새 대통령 취임 후 100일까지는 날카로운 비판을 삼가는 ‘허니문 기간’을 갖는다. 새 행정부에 어느 정도 현안을 파악하고 일할 시간을 준 다음에 본격적으로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최악의 공격을 받았던 트럼프도 약간의 ‘허니문 효과’를 봤다. 유세 초반 30%대였던 호감도가 50%를 훌쩍 넘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부언론’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성향 미디어들에는 이것도 없는 것 같다. 트럼프의 발언과 태도를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여론이 55%에 이르는데도, 힐러리 클린턴을 노골적으로 밀었던 좌파 언론들은 트럼프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대선의 마지막 절차인 선거인단 투표(19일)를 앞두고도 ‘반란 투표’ 종용 보도를 내보내는가 하면 실제로 ‘표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몰아갔다.

유세 때 “민주당과 언론이라는 두 적과 싸운다”며 진저리를 쳤던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행태가 “경멸스럽다”며 맞받아쳤다. 그는 “내 지지자들이 선거 패배 진영에서 지금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위협했다면 경멸을 받고 끔찍한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라면서 “언론이 이러니 내가 트위터를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공방에도 불구하고 미국 실물 경제는 허니문 효과를 뚜렷이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경제만 성장전망이 자꾸 낮아진다는 점이다. 어설픈 정치가 경제를 납치한 꼴이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