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궤변
어떤 사람이 길가에 있던 남의 소를 허락도 받지 않고 끌고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 갔느냐고 심문했는데, 그 사람 왈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끈이 떨어져 있어 그냥 그 끈을 주워 집에 갔을 뿐입니다. 소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길에 떨어진 끈을 주웠을 뿐이고 그 끈에 보지도 못한 소가 매여 있었으니 결코 소를 훔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1% 미만이며 이마저도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최순실 공동정부’라는 초유의 헌정질서 유린 행위로 세상을 뒤집어 놓고는 ‘1% 미만’ ‘사회 통념상 허용’ 운운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청와대 수석을 시켜 모대기업 그룹에 최순실 쪽 사람의 회사 물품을 납품받도록 한 것에는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안타까워 도와주라 했던 것일 뿐”이라고 했는데 어찌 박 대통령에게는 어려움을 겪는 국내 350만개 중소기업 중 유독 최순실 관련 기업만 안타깝게 보여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 대기업 총수들은 이미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에 대해 “정부 쪽 기금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는데도 “자발적 모금”이라고 주장하니, 막다른 골목길에서 행인에게 돈을 뜯어간 폭력배가 행인이 자발적으로 돈을 주지 않았느냐고 강변하는 꼴이다.

또 관저에 있다가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하고 사건 발생 후 7시간 만에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도착한 사실이 다 알려졌는데도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신속하게 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본래 궤변이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을 뜻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 측은 얼핏 들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만 하고 있다. 국정농단과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도 모자라 궤변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하루라도 빨리 탄핵심판 절차를 마무리하고 헌정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서릿발 같은 의지로 분발해줄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다.

이상민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smlee@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