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가 군림한 시절 그린 ‘겨울’은 사계절 시리즈 중 대표작으로 권력에 짓밟힌 서민들의 애한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센 눈바람 속에 농부, 군인, 사냥꾼이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걷는 모습을 극적으로 잡아냈다. 도포를 뒤집어쓰고 한기를 막아보려 하지만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바람의 기세에 눌린 이들의 얼굴에서는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얼룩개도 자연의 맹위에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지만 슬며시 꼬리를 내리며 겁을 먹는다.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사건을 예민한 후각으로 감지한 것일까? 그 후 1808년 5월 마드리드는 프랑스군에 점령됐고, 고야는 1814년 프랑스군에 대항해 봉기한 스페인 민중들이 체포돼 처형되는 살벌한 장면을 ‘1808년 5월2일’과 ‘1808년 5월3일’이란 제목으로 화폭에 남겼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