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배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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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찰리 채플린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뜻밖의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옛 애인인 여배우가 그의 자식을 낳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론의 뭇매 속에서 재판을 받게 된 채플린은 혈액검사 결과를 제시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피고 측 변호사의 현란한 언변에 넘어간 배심원들은 ‘21세가 될 때까지 매주 75달러씩 양육비를 주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혈액형으로 볼 때 도저히 친자식일 수 없는데도 그랬다. 배심원들의 ‘막장 유죄’ 판결 사례다.
반대의 경우는 흑인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 사건이다. 전처 등 2명의 살인죄로 기소된 심슨은 결정적인 정황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호화 변론단의 궤변에 힘입어 흑인 중심의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증거로 제출된 피 묻은 장갑이 너무 작아서 손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등의 제스처와 정치·인종·사회문제까지 얽힌 결과였다. 뒤이은 민사재판에서는 살인에 대한 책임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어이없는 ‘막장 무죄’ 사례다.
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형사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판사가 이를 바탕으로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다. 영연방국가와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이 활용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배심원이 판사와 협의해 형량까지 선고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에서 일반인이 얼마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놓고 줄곧 논란이 있어 왔다.
장점은 판사·검사·변호사의 야합을 없애고, 당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복잡한 내용일수록 변호사의 말장난에 넘어갈 위험이 크고, 법보다 감정에 치우쳐 인민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양심적인 법조인의 판결과 달리 일반 배심원의 판결은 감정적이고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배심원들에게 호감이나 동정을 사서 재판을 뒤집어보려는 피고 진영의 ‘작전 회의’와 은밀한 뒷거래는 법정 드라마의 단골 장면이다.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하고 있다. 영미권과 달리 배심원은 ‘권고’만 하고, 판사가 이를 토대로 유무죄와 양형 선고를 내린다. 대부분이 ‘권고’에 따르지만 2심에서 뒤집히는 사례도 있다. 소송법적 절차와 법리보다는 감정과 정서가 앞서는 우리 현실에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배심 재판과 광장의 재판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반대의 경우는 흑인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 사건이다. 전처 등 2명의 살인죄로 기소된 심슨은 결정적인 정황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호화 변론단의 궤변에 힘입어 흑인 중심의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증거로 제출된 피 묻은 장갑이 너무 작아서 손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등의 제스처와 정치·인종·사회문제까지 얽힌 결과였다. 뒤이은 민사재판에서는 살인에 대한 책임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어이없는 ‘막장 무죄’ 사례다.
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형사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판사가 이를 바탕으로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다. 영연방국가와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이 활용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배심원이 판사와 협의해 형량까지 선고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에서 일반인이 얼마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놓고 줄곧 논란이 있어 왔다.
장점은 판사·검사·변호사의 야합을 없애고, 당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복잡한 내용일수록 변호사의 말장난에 넘어갈 위험이 크고, 법보다 감정에 치우쳐 인민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양심적인 법조인의 판결과 달리 일반 배심원의 판결은 감정적이고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배심원들에게 호감이나 동정을 사서 재판을 뒤집어보려는 피고 진영의 ‘작전 회의’와 은밀한 뒷거래는 법정 드라마의 단골 장면이다.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하고 있다. 영미권과 달리 배심원은 ‘권고’만 하고, 판사가 이를 토대로 유무죄와 양형 선고를 내린다. 대부분이 ‘권고’에 따르지만 2심에서 뒤집히는 사례도 있다. 소송법적 절차와 법리보다는 감정과 정서가 앞서는 우리 현실에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배심 재판과 광장의 재판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