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공식 수사 착수와 함께 삼성을 정조준하자 재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강도 높은 수사를 예상하긴 했지만 기업이 첫 타깃으로 꼽힌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검인데 청와대와 최순실이 아니라 삼성 등 기업부터 잡기 시작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최순실 특검법)에 따라 출범한 특검의 수사 대상은 △청와대 문건 유출 및 국가기밀 누설 △최순실 등의 정부 정책결정·사업 및 인사 개입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혹은 비리 방조 △최순실 일가의 불법재산 형성 △승마협회 외압 의혹 등 15가지다. 그중 기업과 관련 있는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기부 △최순실 등을 지원하고 현안을 해결하려 했다는 의혹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도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우병우 등 의혹의 주인공이 아니라 기업부터 털고 있다. 전날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이날 현판식과 함께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삼성의 출연과 정유라 승마 지원을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과 연결지으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은 재단 출연 등이 불가피했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했다가 대대적 세무조사를 받았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때 국민연금의 찬성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재계 1위인데 최순실에게 손을 벌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기업으로선 돈 뺏기고 수사받고 잡혀갈 판이라 허탈하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