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어딘가 익숙한…뉴욕판 '강남 8학군'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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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웬즈데이 마틴 지음 / 신선해 옮김 / 사회평론 / 372쪽 / 1만4000원
웬즈데이 마틴 지음 / 신선해 옮김 / 사회평론 / 372쪽 / 1만4000원
패션과 명품 가방으로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 어느 도우미를 쓰는지부터 살피며 서로의 계급을 매기는 여자들, 자녀를 ‘좋은 어린이집’과 ‘훌륭한 유치원’ ‘빛나는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들. 철옹성 같은 ‘그들만의 최상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완벽한 몸매와 외모를 가꾸지만 신경안정제와 술에 몰래 의지하고, 남편의 경제력 없인 하루도 홀로 버틸 수 없는 가정주부들.
미국 문화비평가 웬즈데이 마틴은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에서 뉴욕 맨해튼 최고의 부자 동네로 꼽히는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마주하고 부대낀 엄마들의 모습을 이같이 묘사한다. 그에게 이런 모습은 “가히 괴이한 수준”으로 비친다. 하지만 국내 독자에겐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한국엔 ‘강남 엄마’가 있으니까. 다만 ‘미국의 치맛바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놀라움과 허탈함으로 연결된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인류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어른이 된 뒤 고향인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 뉴욕에 정착한다. 30대 중반에 뉴욕 토박이 남자와 결혼하고,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다운타운에서 파크애비뉴 70번가 어퍼이스트사이드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태까지 보지 못한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이 책은 그 문화적 충격을 인류학 보고서 형식으로 유머를 담아 풀어낸 ‘부자가 아닌 평범한 엄마의 어퍼이스트사이드 입성 분투기’다.
저자는 어퍼이스트사이드를 ‘섬’이라 부른다. 자신을 포함해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여성을 ‘종족’이라 표현하면서 ‘종족 연구를 하다가 동화되는 과정’ ‘종족의 특징’ 등을 재치있게 표현한다. 독자에겐 한장 한장 재미있게 다가오지만 그 형식에 담긴 행간의 메시지에선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현장 참여 관찰 연구자’란 ‘정신무장’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사회의 단면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책의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 고학력자지만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주택 구입과 자녀 교육 등 각종 일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돈으로 사서 한다. 끝없이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자녀의 생일잔치를 위해 5000달러(약 600만원)를 쓰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들끼리 서로의 옷과 가방, 액세서리에 대해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으며 날카롭게 경쟁하고, 매일 얼굴과 몸을 가꾼다. 엄마들이 그러는 사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어린이들’은 놀이터 대신 여러 학원을 돌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법을 어른으로부터 배운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저자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가는데 명품 가방을 든 중년 여성이 그를 일부러 치고 지나가며 비웃는다. 왕따 되기를 피하고, 생존하기 위해 결국 에르메스 버킨백을 구입한다.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들 모임에 부지런히 나가보지만 대부분 허사다.
하지만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이 유리처럼 부서지기 쉽고 나약한 존재임을 애써 숨기고 산다는 걸 간파한다. 결국 행복하게 살고 싶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소망하는 엄마들이고, 속으로는 자상한 면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과 ‘강남 엄마’를 낳은 게 부유함의 대가로 여성을 속박하는 사회 시스템임을 일깨운다. 유쾌함 속에 현실의 서글픔이 담겨서일까. 부자들의 세계를 인류학적으로 묘사해서일까. 미국에선 지난해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 제작사 MGM이 치열한 경쟁 끝에 영화 판권을 따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미국 문화비평가 웬즈데이 마틴은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에서 뉴욕 맨해튼 최고의 부자 동네로 꼽히는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마주하고 부대낀 엄마들의 모습을 이같이 묘사한다. 그에게 이런 모습은 “가히 괴이한 수준”으로 비친다. 하지만 국내 독자에겐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한국엔 ‘강남 엄마’가 있으니까. 다만 ‘미국의 치맛바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놀라움과 허탈함으로 연결된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인류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어른이 된 뒤 고향인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 뉴욕에 정착한다. 30대 중반에 뉴욕 토박이 남자와 결혼하고,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다운타운에서 파크애비뉴 70번가 어퍼이스트사이드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태까지 보지 못한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이 책은 그 문화적 충격을 인류학 보고서 형식으로 유머를 담아 풀어낸 ‘부자가 아닌 평범한 엄마의 어퍼이스트사이드 입성 분투기’다.
저자는 어퍼이스트사이드를 ‘섬’이라 부른다. 자신을 포함해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여성을 ‘종족’이라 표현하면서 ‘종족 연구를 하다가 동화되는 과정’ ‘종족의 특징’ 등을 재치있게 표현한다. 독자에겐 한장 한장 재미있게 다가오지만 그 형식에 담긴 행간의 메시지에선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현장 참여 관찰 연구자’란 ‘정신무장’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사회의 단면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책의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 고학력자지만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주택 구입과 자녀 교육 등 각종 일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돈으로 사서 한다. 끝없이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자녀의 생일잔치를 위해 5000달러(약 600만원)를 쓰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들끼리 서로의 옷과 가방, 액세서리에 대해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으며 날카롭게 경쟁하고, 매일 얼굴과 몸을 가꾼다. 엄마들이 그러는 사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어린이들’은 놀이터 대신 여러 학원을 돌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법을 어른으로부터 배운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저자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가는데 명품 가방을 든 중년 여성이 그를 일부러 치고 지나가며 비웃는다. 왕따 되기를 피하고, 생존하기 위해 결국 에르메스 버킨백을 구입한다.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들 모임에 부지런히 나가보지만 대부분 허사다.
하지만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이 유리처럼 부서지기 쉽고 나약한 존재임을 애써 숨기고 산다는 걸 간파한다. 결국 행복하게 살고 싶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소망하는 엄마들이고, 속으로는 자상한 면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과 ‘강남 엄마’를 낳은 게 부유함의 대가로 여성을 속박하는 사회 시스템임을 일깨운다. 유쾌함 속에 현실의 서글픔이 담겨서일까. 부자들의 세계를 인류학적으로 묘사해서일까. 미국에선 지난해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 제작사 MGM이 치열한 경쟁 끝에 영화 판권을 따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