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보수의 계보
보수의 기원은 1660년 영국의 왕정복고 과정에서 형성된 토리당에서 찾는 게 보통이다. 당시 제임스 2세를 지지했던 왕권 옹호파와 귀족들을 ‘토리’(아일랜드 산적)라고 불렀다. 이에 반해 제임스 2세를 몰아내려는 의회 인사들을 ‘휘그’(스코틀랜드 부랑아)로 칭했다. 양당제의 시초다. 당시 토리 사상가로 유명한 R 샌더슨은 왕권신수설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정치적 권위가 개인의 합의에서 나온다는 사회계약설을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보수주의 이념은 여기서 출발했다.

정작 보수주의가 근대적 정치 이념으로 성립된 것은 100년 뒤인 에드먼드 버크에 의해서였다. 버크는 특히 평등을 기치로 한 운동은 사회가 존속하고 번영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버크는 정치적 변화를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적응하려는 유연한 태도를 강조했다. 개혁이나 혁신을 부정하는 대륙 보수주의와 다른 부분이다.

토리는 1830년대 보수당으로 거듭나면서 버크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1834년 총리가 된 로버트 필은 근대 보수주의의 모든 원칙을 세웠다. 그는 공동사회나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이를 강령에 넣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유무역을 보수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다. 필의 정신은 처칠과 대처 시대에 꽃피운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또 다른 전통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독립 자체가 영국의 과세나 정치 개혁에 대한 보수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하면서 보수주의 국가 전통이 있다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적어도 19세기까지 큰 차이가 없었다. 노예해방을 관철한 링컨도 공화당이었다. 양대 정당은 20세기 초까지 작은 정부와 감세, 규제완화 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뉴딜정책이 분기점이었다. 보수는 정부의 개입보다 시장경제와 자유를 강조했다. 물론 좌익은 19세기 이후 각종 형태의 사회주의 운동으로 만개해나갔고 소련 혁명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나와 보수철학을 분명히 했다. 세력의 결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 불어닥친 반공주의 바람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구별하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1980년대 레이건에 의해 보수 가치는 꽃피운다. 트럼프는 보수정치의 변용이다. 보수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포퓰리즘의 한 형태라는 지적도 많다.

보수는 미국과 영국이 수백년 동안 쌓아온 유산이다. 근대 역사가 일천한 국가에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가짜 보수’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