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런티어] 조급한 성과주의 노벨상 가로막아…한국 R&D의 미래 '뿌리연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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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 연구에 급급
정권 바뀔 때마다 정책도 '오락가락'
기초연구 성과 좌우할 연속성 결여
단기 결과에 집착하는 풍토도 문제
국가주도 장기 비전이 우선
30~40년씩 걸리는 장기과제
안정적으로 연구하도록 의무 할당
실패해도 재정적 부담 덜어줘야
융합형 인재 양성도 시급
대학 수업 일부 산업현장서 이수
'일학습병행제'로 창의인재 수혈해야
정권 바뀔 때마다 정책도 '오락가락'
기초연구 성과 좌우할 연속성 결여
단기 결과에 집착하는 풍토도 문제
국가주도 장기 비전이 우선
30~40년씩 걸리는 장기과제
안정적으로 연구하도록 의무 할당
실패해도 재정적 부담 덜어줘야
융합형 인재 양성도 시급
대학 수업 일부 산업현장서 이수
'일학습병행제'로 창의인재 수혈해야
연구원들에게 연구개발(R&D) 과정에서 부딪히는 각종 어려움을 손꼽아달라고 하면 전공에 관계없이 첫 번째로 일관성이 결여된 정부의 R&D 지원정책을 지적한다. A대학 교수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 없이 정권 교체에 따라 과학기술 R&D 거버넌스 관리와 주체가 바뀌고 연구 정책도 왔다갔다 하면서 연구 연속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는 조급한 성과주의다. B대학 교수는 “단기적인 결과물 창출만 강조하고 독촉하는 연구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한탄했다. 세 번째는 탁상행정이다. 산업연구원의 C선임연구위원은 “관료들이 급변하는 시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수립한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지막 지적은 잘못을 알고도 고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D책임연구원은 “잘못된 정책은 개선해야 한다”며 “관료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고 연구자들도 잘못된 관습에 편승, 이득을 누리면서 제대로 개선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개발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런 연구 환경이 유지되는한 우리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연구원들이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R&D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단기목표 중심으로 수행된 R&D에서 벗어나 산·학·연·관의 역할과 장기적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담은 과학기술 정책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폐쇄적 과학기술 정책이 ‘참여형 거버넌스’ 정착을 위한 전문가 중심, 중간 조직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필요성도 크다.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혁신 목표 아래 범부처 최상위 계획과 세부적인 정책들을 실행해야 한다.
미국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범부처의 과학기술정책을 총괄, 조정한다. 국가 R&D 철학의 핵심은 자율성 보장이다.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 과학·교육 전문가로 지원 기관 구성, 연구방법·범위의 자율적 결정 등에 주력한다. 미국은 이런 원칙에 따라 국립과학재단을 설립, 과학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과학기술 강국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독일은 자유롭고 독립된 연구를 통한 과학진흥을 위해 막스플랑크연구회를 1948년 설립, 세계 최고의 연구조직으로 성장시켰다. 막스플랑크는 예산의 90%를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지원받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연구자가 연구 수행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갖는다. 과학기술 강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우선 정부는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R&D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 국가적으로 주도할 분야를 재정립, 중장기 R&D 투자 방향을 마련하고 나머지 분야에선 민간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기초연구 분야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장기연구비중 의무할당제’ 도입을 검토하고, 연구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차별화된 지원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크다. 일부 연구자의 부정을 문제삼아 모든 연구자의 활동을 제한하는 제도를 지양하고, R&D 관리제도를 ‘원칙적 허용-예외 금지’라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성실한 연구자에게 본인의 실패과정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실패지식 활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실패에 따른 재정적 위험을 분담하는 ‘공동위험경감제도’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아울러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이 국정 운영의 중심으로서 경제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기초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여론 조성도 필요하다. ‘보여주기식 연구’가 아닌 ‘뿌리연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지원에서 시대 흐름에 맞는 정책이 요구된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프로그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IPP(Industry Professional Practice)형 일학습병행제’가 주목받는 것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 교과과정 일부를 산업현장에서 4~10개월간 이수하면서 실무 중심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기업은 인재를 조기에 발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독일·스위스 식 도제제도를 한국에 맞게 설계한 ‘IPP형 일학습병행제’가 과학기술 개발 정책과 성공적으로 결합된다면 창의적이면서 실용적인 인재들을 많이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
두 번째는 조급한 성과주의다. B대학 교수는 “단기적인 결과물 창출만 강조하고 독촉하는 연구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한탄했다. 세 번째는 탁상행정이다. 산업연구원의 C선임연구위원은 “관료들이 급변하는 시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수립한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지막 지적은 잘못을 알고도 고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D책임연구원은 “잘못된 정책은 개선해야 한다”며 “관료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고 연구자들도 잘못된 관습에 편승, 이득을 누리면서 제대로 개선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개발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런 연구 환경이 유지되는한 우리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연구원들이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R&D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단기목표 중심으로 수행된 R&D에서 벗어나 산·학·연·관의 역할과 장기적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담은 과학기술 정책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폐쇄적 과학기술 정책이 ‘참여형 거버넌스’ 정착을 위한 전문가 중심, 중간 조직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필요성도 크다.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혁신 목표 아래 범부처 최상위 계획과 세부적인 정책들을 실행해야 한다.
미국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범부처의 과학기술정책을 총괄, 조정한다. 국가 R&D 철학의 핵심은 자율성 보장이다.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 과학·교육 전문가로 지원 기관 구성, 연구방법·범위의 자율적 결정 등에 주력한다. 미국은 이런 원칙에 따라 국립과학재단을 설립, 과학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과학기술 강국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독일은 자유롭고 독립된 연구를 통한 과학진흥을 위해 막스플랑크연구회를 1948년 설립, 세계 최고의 연구조직으로 성장시켰다. 막스플랑크는 예산의 90%를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지원받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연구자가 연구 수행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갖는다. 과학기술 강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우선 정부는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R&D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 국가적으로 주도할 분야를 재정립, 중장기 R&D 투자 방향을 마련하고 나머지 분야에선 민간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기초연구 분야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장기연구비중 의무할당제’ 도입을 검토하고, 연구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차별화된 지원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크다. 일부 연구자의 부정을 문제삼아 모든 연구자의 활동을 제한하는 제도를 지양하고, R&D 관리제도를 ‘원칙적 허용-예외 금지’라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성실한 연구자에게 본인의 실패과정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실패지식 활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실패에 따른 재정적 위험을 분담하는 ‘공동위험경감제도’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아울러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이 국정 운영의 중심으로서 경제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기초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여론 조성도 필요하다. ‘보여주기식 연구’가 아닌 ‘뿌리연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지원에서 시대 흐름에 맞는 정책이 요구된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프로그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IPP(Industry Professional Practice)형 일학습병행제’가 주목받는 것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 교과과정 일부를 산업현장에서 4~10개월간 이수하면서 실무 중심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기업은 인재를 조기에 발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독일·스위스 식 도제제도를 한국에 맞게 설계한 ‘IPP형 일학습병행제’가 과학기술 개발 정책과 성공적으로 결합된다면 창의적이면서 실용적인 인재들을 많이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