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다양한 벤처 육성
사내벤처 통해 창업 유도…미국 실리콘밸리 업체도 투자
한화·롯데도 스타트업 키워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삼성벤처투자에 출자한 금액은 지난해(6800억원)보다 4000억원 이상 늘어나며 올해 처음 1조원을 넘겼다. 2011년(1800억원)에 비하면 다섯 배 넘게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서만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손영권·데이비드 은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와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를 통해서도 현지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별도 펀드를 거치지 않고 삼성전자가 직접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도 있다. 이를 다 합하면 삼성이 운영하는 벤처캐피털(VC) 펀드 규모만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 추산이다.
직접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C랩이라는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창업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신규 아이템을 구상하면 사내 심사를 통해 이를 보완해 주고, 자체 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투자금도 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삼성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자기 아이템을 만들면 결국 삼성과 협력하게 된다”며 “창업자는 돈을 벌고 삼성은 새로운 아이템을 큰 투자 없이 개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서다. 삼성의 반도체 분야 경쟁자인 인텔과 퀄컴, 소프트웨어 분야 경쟁자인 구글이 운영하는 벤처펀드 규모는 여전히 삼성보다 크다. 인텔은 1991년 자체 VC를 세운 뒤 지난해까지 57개국 1440개 기업에 116억400만달러(약 14조원)를 투자했다.
삼성뿐 아니다. 다른 국내 대기업도 잇따라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실탄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네이버, GS리테일 등과 공동으로 1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SK와 LG그룹에도 참여를 요청했으며, 두 그룹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이던 다른 대기업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10월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 보육기관) ‘드림플러스’를 열었다. 한화 관계자는 “내년엔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도 크게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자체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롯데의 비즈니스와 연관돼 있는 이커머스 쪽 외에도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현대카드도 최근 강남역 인근에 스타트업 업무 공간인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을 세웠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