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관시(關係)는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배타적이며, 오랜 시간 숙성이 된다는 세 가지 특징을 언급했다. 이번에는 관시는 그 자체가 재화로서 교환 가능함과 권력을 재생산함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는 때로는 반사회적인 부정적인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네 번째 특징 - 교환성

서양에서는 교환할 수 있는 재화로 금전 선물 지위 감정 정보 및 서비스 등 여섯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짜이쉬에웨이 난징대 교수는 “이 여섯 가지 외에 중국에는 또 하나의 교환 가능한 재화가 있는데 바로 관시”라고 말했다. 중국 사람에게 누구를 소개해달라는 말은 결국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빌려달라”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네가 그 사람을 알고 있으니 소개해달라”와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신세라고 여기기는 하지만, 중국인의 경우 그 부탁하는 자와 부탁받는 자 사이의 의무와 책임이 훨씬 막중하다.

중국의 경우 부탁하는 사람은 이미 ‘欠人情(인정을 빚지다)’한 것이다. 빚을 지면 갚아야 하는데, 한국은 웬만한 정도는 꼭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맥을 소개받고 나서 갚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인에게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금전 같은 재화를 빌리고 나서 갚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중국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한국 사람들이 실수하는 대표적인 상황이다.

중국의 모 학자는 중국인의 사상의 뿌리는 ‘報(되갚다)’에 있다고도 한다. 禮尙往來(선물 또는 예의는 주고받는 것이다)와 滴水之恩涌泉相報(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갚는다)라는 말은 중국인의 보답에 대한 사유를 엿보여 준다. 한편 중국인은 은혜뿐 아니라 보복 역시 반드시 돌려준다(報)는 점을 명심하자.

借财不借路. 의역하면 금전은 빌려줘도 인맥은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인과 사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관시를 소개받고 나서 모른 척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중국인에게 관시는 재화를 얻기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화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특징 - 권력의 재생산

사람들이 서로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한다. 이런 당연한 미덕이 중국 사회에서 특색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관시가 ‘유난히’ 권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중국의 관시를 바둑에 비유한다. 서양의 체스나 혹은 중국 장기의 말들은 각각의 ‘신분’ 또는 중요성이 정해져 있다. 장기에서 차나 포를 졸과 맞바꾸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없다. 가치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둑의 모든 돌들은 바둑을 두기 전에는 똑같다. 하지만 대국이 진행되면서 어떤 돌들은 악수가 되고, 반면에 어떤 돌들은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한다. 왜일까? 무엇이 본래 같은 돌 임에도 악수와 묘수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바로 주위의 돌이 어디에 놓여졌는지로 결정된다. 비유의 핵심은 중국에서 한 사람의 신분 또는 권력은 장기처럼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내 주위에 어떤 인맥이 있는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부 푸얼다이(富二代·부자 2세), 관얼다이(官二代·권력 2세)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흙수저라도 관시를 통해 신분 상승 또는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인들은 그가 어느 위치 또는 어느 분야에 있든 다양한 인맥을 부지런히 만들어 간다. 왜냐하면 風水輪流轉(풍수는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떤 인물로 변신할지 알 수 없다. 잘나가는 인맥과도 잘 지내지만, 아직 변화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燒冷灶(차가운 부뚜막을 데운다)라는 말도 있다. 부뚜막이 차가운 이유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게 아직 없을 때의 부뚜막을 데워주면 그는 평생 그 은혜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미 잘나가는 사람들하고만 관시를 만들려는 일부 기업에서는 한 번쯤 고민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만약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나 주고받는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다음 편에서 소개할 관시의 또 다른 특징인 확장성을 계속 읽어보기를 권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