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항공모함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이 순양함으로 건조 중이던 HMS 퓨리어스의 설계를 바꿔 갑판에서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항공모함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해전의 핵심은 큰 전함과 대구경 함포를 앞세운 ‘거함거포(巨艦巨砲)’ 전략이었다. 여기에 필수적인 정찰·관측 기능을 담당하는 게 항공기였으니, 너도나도 항공모함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항공모함의 역사는 100년에 이르지만 설계 단계부터 항공모함용으로 건조한 것은 1922년 취역한 일본의 호쇼(鳳翔)가 처음이다. 그해 워싱턴군축조약과 1930년 런던해군협정을 거치면서 각국의 전함 보유가 제한되자 열강은 주력함을 개조해 항공모함으로 바꿨다. 당시 항공모함 보유국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뿐이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항공모함 전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진주만 공습은 항모기동전술의 효시였다. 미 해군도 이때 살아남은 항모를 활용해 반격을 펼칠 수 있었다.

항공모함의 전투력은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 미 7함대를 예로 들자면 항공모함 한 척에 이지스 구축함 일곱 척과 순양함 두 척, 상륙함 네 척, 핵추진 잠수함 세 척이 같이 움직인다. 총 병력은 6만여명. 항공모함 한 척에 달린 첨단 레이더만 10여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온 로널드 레이건호는 만재배수량 10만4200t에 최대 병력 6000명, 탑재기가 90여대나 된다. 갑판 길이 333m에 작전반경은 1000㎞, 속력은 시속 30노트(56㎞)다. 원자로 덕분에 항속거리는 무제한이다.

항공모함은 뛰어난 전투능력과 주변국에 대한 기선제압 효과 때문에 세계 해군이 보유하길 원한다. 하지만 막대한 개발비와 건조·운영비 때문에 어지간해선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개국뿐이다. 인도는 항공모함을 보유한 뒤 군사력 순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4위로 껑충 뛰었다. 항공모함 한 척 가격은 약 7조5000억원, 유지비는 연간 3000억~5000억원에 이른다. 미국은 11척을 갖고 있다. 나머지 국가는 대부분 한두 척이다.

중국은 옛 소련의 미완성 항모를 구입해 랴오닝(遼寧)함으로 개조했다. 두 번째 항모 베이징함도 독자 기술로 건조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랴오닝함 편대가 서해와 서태평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항공모함의 역사는 곧 해양대국의 역사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어떤가.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지난해 7위에서 올해 11위로 떨어졌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