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외교학부 4학년 신모씨(24)는 지난 학기 초급 중국어 강의를 수강하고 좌절감을 느꼈다. 공부를 열심히 해 시험도 잘봤다고 생각했는데 성적은 B학점에 그친 탓이다. 그는 “외국어고에서 중국어를 이미 배운 학생들이 수강생의 절반에 가까웠다”며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알면서도 손쉽게 높은 학점을 받으려고 초급반 수업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이 같은 ‘꼼수’를 없애기로 했다. 내년 1학기부터 제2외국어 초급 수업에 외고 출신과 유학파의 수강을 금지하기로 했다. 취업난 속 공정한 학점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서울대 입학생 가운데 특수목적고 출신 비율이 2006년 18.3%에서 올해 44.6%로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점도 감안했다.

서울대는 2014년에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과목을 응시한 학생들이 해당 언어 초급수업을 수강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별 효과가 없었다. 수험생 상당수가 수능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아랍어 등 소수어를 응시하는 기현상이 나타나면서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 응시자의 69%가 아랍어를 응시했다.

서울대는 내년 1학기부터 수능 과목이 있는 중국어, 독일어 등 7개 언어의 초급강의 수강 제한 대상을 ‘고등학교에서 12단위 이상 제2외국어를 이수한 학생’까지 확대했다. 1단위는 ‘한 학기(17주)에 1시간 수업’을 의미한다. 일반고에선 보통 8~12단위, 외고는 20~30단위씩 제2외국어 수업을 한다.

이탈리아어, 스와힐리어 등 수능 과목에 없는 11개 언어 강의와 ‘말하기’ 등 심화 강의도 해당 언어권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수강할 수 없다. 이 같은 규정을 어긴 경우 ‘수강부적격자’로 분류해 F학점(0점) 처리된다.

이재영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은 “학생들이 학점 지상주의에 매몰돼 평생 필요한 제2외국어 수업을 학점 따는 강의로 생각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김형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