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홍완선은 과연 배임인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하 홍완선)이 2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업무상 배임 혐의다.

홍완선에게 배임죄를 물으려면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의 합병법인) 주가가 하락해 투자손실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양사 합병에 찬성했어야 한다. 청와대나 정부 지시가 있었느냐 여부는 일단 부차적이다.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것은 홍완선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에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몇 가지 의문점과 의견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짚어본다.

합병 불발 땐 주가 올랐을까

첫째, 지금의 주가 하락은 합병에 찬성한 결과물인가? 지난 23일 삼성물산 종가는 12만8500원으로 합병기준 가격(2015년 5월22일)인 15만9294원에 비해 19.3%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폭(5.1%)보다 컸지만 동종 건설업종 하락폭(25.3%)보다는 적었다. 삼성물산 주가가 시장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져 합병을 무산시켰을 경우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주가는 어떻게 됐을까. 합병비율(제일모직 대 옛 삼성물산=1 대 0.35)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주장을 수용하면 옛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 불발 후에 단기적으로 올랐을 수 있다. 이 경우 고평가 논란이 있었던 제일모직 주가는 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합병 후 지난해 4분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회계상 잠재부실을 무려 3조원이나 털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시점의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 전보다 훨씬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많은 증권 전문가의 분석이다. 냉정하게 보면 옛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계기로 잠재부실을 안전하게, 시장에 충격을 덜 주면서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 주주에게 이로웠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결과에 대한 처벌은 안돼

둘째, 주가는 예측 가능한 영역인가? 배임 여부를 따지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합병 후 삼성물산 주가는 11만6000원과 16만9000원 사이에서 널뛰기 양상을 보였다. 누구든 이런 흐름을 미리 예상할 수 없다. 다만 기대이익과 손실 사이에서 최적의 선택지를 찾을 뿐이다.

당시 합병 시너지에 대한 긍정적 검토와 별개로 국민연금 실무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이었다. 더욱이 삼성물산에 대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습적인 지분 매입으로 투기자본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던 시점이었다. “국민연금 자산(삼성 계열사 지분) 가치가 급락하고, 엘리엇이 막대한 투자과실을 챙겨가는 상황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 A씨의 전언이다.

홍완선에 대한 배임죄 적용 여부는 그동안 검찰이 많은 기업인을 배임죄로 기소하면서 논란을 야기했던 ‘경영판단의 적정성’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아직은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투자를 수사 대상에 올린 것이다.

만약 홍완선이 내심 합병에 찬성하면서도 외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최종 결정을 미뤄 합병이 무산됐다면, 그로 인해 A씨의 우려가 현실화됐다면 어찌 됐을까. 그 또한 배임이 아니었을까? 이래도 저래도 결과적으로 배임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투자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