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부산대와 경북대 총장 임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기춘 전 실장(왼쪽)과 우병우 전 수석. / 화면 갈무리 및 한경 DB
각각 부산대와 경북대 총장 임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기춘 전 실장(왼쪽)과 우병우 전 수석. / 화면 갈무리 및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던 국립대 총장 공석사태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퍼즐 조각은 청와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총장 인사개입 배후로 지목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마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립대들에 따르면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행적 국립대 총장 임명에 대한 수사를 요청키로 했다. 국교련은 앞서 국정조사특위에도 공문을 보내 이 문제를 조사해 달라고 청했다.

특검에 발송하는 공문에는 국립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비선실세 개입 의혹도 추가된다. 총장 임명 파행에 따른 공석사태 역시 보다 구체적인 관련 정황과 사례를 제시할 예정이다.

◆ "임명거부 이유라도 알려달라" 속타는 국립대

국교련이 문제 삼는 파행적 총장 임명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총장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 총장 임명이 지연되는 경우다. 공주대·한국방송통신대·전주교대·광주교대·전남대(총장 공석 기간순) 등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총장 공백사태를 빚고 있다.

학내 선거를 거쳐 추천한 후보자 중 1순위를 거르고 2순위를 총장에 임명한 것도 문제라고 봤다. 경북대·경상대·순천대·충남대·한국해양대 등이 해당된다. 국교련은 정부가 1순위 후보 배제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점을 들어 인사권을 틀어쥔 ‘국립대 길들이기’로 받아들였다.

김영철 국교련 상임회장(전남대 교수)은 “현 정부 들어 사유조차 알리지 않고 총장 임용을 미루거나 2순위 후보자를 임용하는 사태가 잦았다”면서 “총장직선제 폐지 정책 관철을 위한 길들이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선실세와 연결돼 청와대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혹에 대한 각종 물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정책 반기 '직선제 총장'은 왜 임명했을까

전호환 부산대 총장(왼쪽)과 김상동 경북대 총장. 전 총장은 직선제 1순위, 김 총장은 간선제 2순위 후보자로 추천돼 각각 올해 5월과 10월 임명됐다./ 한경 DB
전호환 부산대 총장(왼쪽)과 김상동 경북대 총장. 전 총장은 직선제 1순위, 김 총장은 간선제 2순위 후보자로 추천돼 각각 올해 5월과 10월 임명됐다./ 한경 DB
돌이켜보면 정부가 올해 5월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임명한 것이 ‘변곡점’이 됐다. 전 총장은 직선제로 선출된 후보자였다. 총장직선제 폐지 및 간선제 도입을 유도해온 교육부 정책에 반기를 든 셈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1순위 후보자인 전 총장을 그대로 임명했다. 정부에 맞서 직선제 고수를 외쳐온 국립대 교수들마저 놀란 결과였다.

정부는 국립대 평가지표에 간선제 전환 여부를 넣을 만큼 강하게 압박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8월, 고(故) 고현철 교수의 투신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부산대가 행·재정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립대 중 유일하게 직선제를 채택한 배경이다. 이 같은 특수 사정 때문에 정부도 부산대의 직선제 총장을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전 총장이 작년 12월경 김기춘 전 실장에 ‘읍소’한 문건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 부산시 700여 명 교수 서명 지원으로 현 정부 출범에 기여,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대학정책 추진에 적극 동참하고 있음’ 등 전 총장의 친정부 성향을 어필한 내용이 담겼다.

어떤 형태로든 김 전 실장이 총장 임명에 관여했을 개연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 국립대 교수는 “그토록 직선제 폐지를 압박해놓고 직선제 총장을 임명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 청와대가 나서 교육부 정책을 뒤집은 꼴 아니냐”라고 짚었다.

◆ 청와대 개입설에 흔들리는 교육부…令 서겠나

부산대 사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케이스가 경북대다. 약 2년간의 공백 끝에 지난 10월 2순위 김상동 교수가 총장으로 임명됐다. 정부 정책대로 간선제를 치러 1순위 후보자로 뽑힌 김사열 교수는 끝내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

김사열 교수의 진보 성향 활동경력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는 실제로 과거 경력을 반성하는 내용의 각서를 쓸 것을 요구받은 적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 과정에 개입해 김 교수를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 우병우 전 수석이다. 이달 22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우 전 수석은 물론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 개입설이 교육부 방침에 균열을 내면서 정책의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총장간선제 도입을 통해 학내 파벌정치와 비효율성을 개선하겠다는 당초 취지마저 무색하게 됐다.

김영철 국교련 회장은 “부산대 총장 임명 당시 교육부 고위관료가 연락해와 ‘부산대는 예외적 사례다. 직선제 시그널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 있다. 어이가 없었다”며 “청와대 개입으로 일관성 잃은 정책을 교육부가 대학에 강요하는 게 맞느냐”고 비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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