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숙취 해소법
작년 5월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주한 외교관이 회식 후 행방불명된 것. 주변 CCTV를 샅샅이 뒤진 끝에 이틀 만에 숙소에서 숙취로 잠든 그를 발견했다. 최근 경찰이 이른 아침 집중 음주단속을 벌인 결과 전국에서 수백명이 적발됐다고 한다. 술이 덜 깬 채 운전대를 잡은 탓이다. 출근길 숙취운전은 말릴 사람도 없어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

연말을 맞아 숙취(宿醉)의 나날이다. 온갖 송년모임에서 호기롭게 폭음한 뒤끝은 길고도 괴롭다. 숙취는 알코올이 체내에서 독성이 있는 아세트알데히드로 남아 잠이 깬 뒤에도 속쓰림, 두통, 구토, 심신 무기력 등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술에 섞인 불순물 탓이란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일찍이 속풀이 해장국이 발달해 종류만도 수십가지다. 콩나물, 북어, 복어, 뼈다귀, 선지, 우거지, 재첩, 순두부…. 나름대로 화학적 근거도 있다.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은 알코올 분해를 돕고, 북어의 글루타치온 성분은 단백질 손상을 막는다. 재첩의 오르니틴은 간 해독에 좋다. 숙취해소 음료나 건강식품도 대개 이런 성분들이다. 요즘엔 숙취해소용 아이스크림, 젤리까지 나왔다.

서양인도 숙취는 마찬가지다. 영어에서 알딸딸한 상태를 tipsy, 엄청 취하면 wasted, 고주망태가 되면 hammered, 다음날까지 이어지면 hangover라고 표현한다. 그런 경험이 많다는 얘기다. 나라마다 숙취해소법도 다채롭다. 미국에선 꿀물과 사이다, 바나나, 커피 등을 먹는다. 토마토주스를 섞은 해장 칵테일 ‘레드아이’도 있다. 영국인은 주로 계란, 토마토를 먹고 보드카에 토마토즙을 섞은 ‘블러디 메리’를 해장술로 마신다.

프랑스는 양파와 치즈 수프인 ‘아 로뇽’을 먹는다. 독일 핀란드 등 북유럽에선 청어절임(롤몹스)을 즐긴다. 콩나물처럼 아스파라긴산이 많다. 스페인에선 달착지근한 추로(일명 츄러스)가 해장음식이다. 보드카 천국인 러시아는 오이와 양배추즙 음료인 ‘라솔’을 빼놓지 않는다.

이웃 일본과 중국은 차를 주로 마신다. 일본인은 우메보시(매실장아찌)를 녹차에 넣어 마신다. 중국인은 인삼 칡 귤껍질 등을 넣은 전통차(싱주링)를 마시고 날계란을 먹기도 한다. 해장음식도 서양인은 대개 차고, 동양인은 따뜻한 편이다.

반면 사우나는 숙취해소에 금물이라고 한다. 술이 깨는 것 같지만 실은 혈관을 확장시켜 알코올 분해를 방해한다. 해장 커피도 많이 마시면 탈수증상이 생긴다. 해장국도 맵고 뜨거운 것은 위벽에 부담을 줘 피하는 게 좋다. 가장 좋은 숙취해소법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