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여성 은행장으로서 3년 임기를 마친 권선주 기업은행장(가운데)의 이임식이 27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28일 취임하는 김도진 신임 행장(왼쪽 세 번째)을 비롯해 후배 임직원이 권 행장의 손을 잡고 명예로운 퇴임을 축하했다. 기업은행 제공
최초 여성 은행장으로서 3년 임기를 마친 권선주 기업은행장(가운데)의 이임식이 27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28일 취임하는 김도진 신임 행장(왼쪽 세 번째)을 비롯해 후배 임직원이 권 행장의 손을 잡고 명예로운 퇴임을 축하했다. 기업은행 제공
“밖으로 드러나는 업적을 쌓는 것보다 전통을 계승하고 내실을 다지는 게 기업은행을 위하는 더 큰 용기라고 믿고 이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27일 열린 이임식에서 3년 임기를 마친 소감을 이같이 털어놨다.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15층 강당은 국내 첫 여성 은행장 임기를 마친 권 행장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250여명 임직원과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내외부 인사로 가득 찼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의 연결기준 총자산이 300조원(9월 기준)을 넘어섰고 중소기업대출 시장점유율은 역대 최고로 높아졌다는 데 큰 자부심을 보였다. 올해를 포함해 권 행장이 재임한 3년 동안 기업은행은 매년 순이익 1조원을 넘기는 좋은 실적을 올렸다. 뒤에서 조용히 챙겨야 할 것을 챙기는, 권 행장 특유의 ‘어머니 리더십’의 성과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거센 영입 제의를 거절한 그는 재직 기간 경조사를 직원에게도 알리지 않는 깨끗한 처신으로도 주목받았다.

권 행장은 임직원에게 은행의 미래를 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는 “건전성 유지와 자본 확충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앞에서 반드시 지키고 보강해야 할 부분”이라며 “글로벌 진출도 더 과감하게 지역 확장과 현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조와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선 “모든 원망은 나에게 돌리고 상처를 딛고 한마음으로 나아가기 바란다”고 했다.

권 행장은 ‘너의 장미꽃이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제가 공들인 시간만큼 기업은행은 소중한 이름”이라며 “훗날 손주의 용돈통장을 개설해주며 기업은행 성장에 함께했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겠다”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39년 은행원 생활을 마치는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1978년 입사해 서울 동대문지점에서 주판을 잡은 기억부터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지금은 선후배 직원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또 “고도 성장기에는 은행 자산이 불과 몇 년 새 두 배로 불어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은행업의 변화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선 “당분간 집에서 쉬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겠다”며 “집무실에서 옮긴 책들을 정리하고 집안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살펴보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