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교육부는 ‘국정’용으로 제작한 ‘올바른 역사교과서’와 민간업체가 만든 검정 역사교과서를 각급 중·고등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해 쓸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바꾸기로 했다. 보수·진보 진영 간 갈등에 밀려 절충안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교 현장에선 교육부의 ‘갈지자’ 정책으로 혼란만 가중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올바른 역사교과서) 학교현장 적용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초안 격인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지 약 한 달 만으로 ‘국·검정 혼용’이 골자다. 이 부총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다”며 “교육 현장의 안정적인 역사 교육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방침에 따르면 ‘올바른 교과서’ 사용을 원하는 학교는 당장 내년부터 쓸 수 있다. 교육부는 이 같은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하기로 했다. 기존 검정교과서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교육부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2009년 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구(舊) 버전’인 만큼 내년 2월께부터 ‘2015 교육과정’에 맞춰 새 검정교과서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2018년부터 ‘올바른 교과서’와 검정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교육부는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고치기로 했다. 이 규정 3조엔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때는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대원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이 조항을 고쳐 국정도서와 검정도서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선 교육부의 결정을 놓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한국사가 어떻게 출제될지가 미지수다. 이 부총리는 “국·검정교과서의 공통 내용에서만 출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의 A고교 교장은 “사실상 국정도서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가 국정도서에 ‘인센티브’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다.

‘올바른 교과서’를 선택하는 ‘연구학교’ 지정 과정에서도 갈등이 예상된다. 학교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 학교장이 신청하면 된다는 게 교육부 설명인데 학부모와 교사, 학생 간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교육부는 연구학교에 10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포기는 정부의 역점정책이 탄핵 정국 이후 뒤집힌 첫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정 역사교과서가) 이렇게 매도당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이 정치 논리에 휘말린 상황이 아쉽다”며 “국정이냐 검정이냐보다는 안정적이고 일관된 교육이 보장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