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연말연시라도 행복하자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가장 기다렸던 때는 연말이었던 것 같다. 일단 방학인 데다 평소 오후 6시는 돼야 시작하던 TV가 온종일 방송을 했다. 철이 든 다음에야 일본에서 건너온 수입품인 걸 알았지만 ‘요괴인간’이나 ‘타이거마스크’ 같은 만화영화, ‘김일’의 박치기, 그리고 부모님 어깨너머로 ‘여로’나 ‘아씨’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는 어른들에게 모두 고단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어린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니 입학하기 전부터 ‘대입’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돌입해 마치 정해진 고단백 사료를 먹고 근육 마사지까지 받아 육질을 ‘제조’당하는 고베의 와규 같은 삶을 사는 불쌍한 작금의 초등생이 아니었다. 집에서 놀면 시끄러우니 밖에서 놀다오라고 부지깽이를 맞곤 했던, 당시 농가마다 한두 마리씩 볼 수 있던 누렁이처럼, 방목의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목 시절, TV를 틀면 ‘성탄특집’이란 이름 아래 평소에는 보기 힘들던 프로그램이 즐비했다. 아기예수의 탄생에 대한 인형극부터 ‘명화극장’이 아니면 보기 힘들던 ‘벤허’, ‘십계’ 등 추억의 명화들을 3개 채널에서 돌아가면서 방영했다. 오죽하면 필자가 위인전에서 읽은 위인들을 빼면 처음 접하게 된 외국사람 이름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다음으로 찰턴 헤스턴일까. 거기에 아버지가 성탄절이라고 큰맘 먹고 ‘투게더’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오시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시간이 좀 더 흘러 1980년대가 다가왔고 조금 살만해지면서 연말연시가 변색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잊을 게 많아서인지 ‘망년회’란 이름으로 1차, 2차를 넘어 3차는 해야 귀가하곤 했다. 대학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자 역시 괜히 기분이 붕떠서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밤새도록 마시기도 했다. 시국 걱정은 있어도 취업 걱정은 없던 시절이었다. 길거리를 걸으면 여기저기 전파상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있었고 상점마다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씩은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TV에서는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표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가 성장 면에서 정점에 다다르면서 말 그대로 흥청거리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연말연시의 풍속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성장률이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가라앉고 사람들의 의식도 서구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흥청망청 분위기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저작권 문제에다 MP3 등장으로 카세트테이프와 CD가 없어지고 동네 전파상이 몰락하면서 더 이상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없게 됐다.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의 주인공처럼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특별할 것 없는’ 연말연시가 됐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 길이 막히면 가끔 ‘모든 운전자가 동시에 액셀을 밟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황당한 상상을 한다. 신호등이나 기타 장애물이 없을 경우(참고로 이를 경제학자들은 완전시장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강도로 액셀을 밟는다면 교통장애는 일시에 해결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지만.

경제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장참여자가 경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이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경제는 좋아진다. 일종의 자기충족적 균형(self-fulfilling equilibrium)이다. 물론 앞서 본 교통체증 현상만큼이나 현실에서는 이를 스스로 달성하기 힘들다. 모든 기업이 몸조심을 한다는 기대 하에서 특정 기업이 공격적으로 투자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조정실패(coordination failure)’라고 부른다.

연말이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다. 시국이 아니더라도 연말연시 분위기는 우리 경제만큼이나 가라앉아 있다. 연말이라도 행복하자. 대내외적으로 위협요인이 산재한 내년의 난관을 뚫기 위해 긍정적 마인드란 지방을 비축할 시기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