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정치판에는 왜 '내로남불'이 만연할까
1997년 US&월드리포트가 미국인 1000여명에게 ‘천국에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을 물었다. 응답자의 79%가 테레사 수녀를 꼽았다. 이어 오프라 윈프리(66%), 마이클 조던(65%), 콜린 파월(61%), 다이애나비(60%) 순이었다. 하지만 1위는 따로 있었다. 무려 87%가 자기 자신을 꼽은 것이다.

한국인은 다를까. 손해보험협회 설문조사(2004년)에서 응답자의 97.5%가 자신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94.2%는 양보운전도 잘한다고 응답했다. 한데 응답자의 24.0%는 최근 1년간 위반 딱지를 뗐고 23.4%는 사고까지 냈다. 서울연구원 조사(2013년)에서 다른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준수한다는 응답은 고작 20.2%였다.

[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정치판에는 왜 '내로남불'이 만연할까
타인에 엄격하고 자신에 관대한 것은 인간 본성에 가깝다. 신조어로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가 세상을 향해 도는 것(我動說)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世動說)는 식의 인지 편향이다.

좁은 모퉁이 길에서 접촉사고를 낸 운전자는 십중팔구 “저 차가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목청을 돋운다. 상대방도 똑같다. 누가 잘못한 걸까. 실상은 둘 다 제 갈 길을 가던 중이었고 골목길에서 부주의하게 운전한 결과가 아닐까. 자식이 사고를 쳐 학교에 불려온 부모들은 하나같이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라고 푸념한다. 의약단체들이 다툴 때면 자기 집단은 ‘국민건강’을 걱정하는데 다른 집단은 ‘이권 탈취’에 혈안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행태를 심리학에선 인지 부조화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럴 리 없다’는 자기 합리화가 지나쳐 이중잣대로 판단하고 자신의 기억마저 스스로 조작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도 자신의 선택, 생각, 소유물에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한다. 리처드 탈러가 대학원생 시절(1975년) 관찰한 사례 가운데 와인 마니아인 경제학 교수는 자기 와인은 100달러(당시엔 고가) 이상에도 안 팔겠다면서 남의 와인을 살 때는 35달러 이상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내로남불의 결정판은 정치권이다. 정적의 개헌론은 꼼수이고 자기가 제안하면 구국의 결단이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난하면서 그런 제왕이 되고 싶은 대선 잠룡은 열 손가락도 모자란다. 똑같은 퍼주기여도 우리 당 공약은 합리적이고 상대 당은 포퓰리즘이라고 욕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과잉이 내로남불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 눈의 티끌만 손가락질하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