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통화정책도 완화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금리인상에 발동을 걸었지만 국내 기준금리(연 1.25%)는 아직 올릴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내년에도 2%대 저성장이 예상되면서 정부 또한 21조원 규모의 경기보강에 나서기로 한 상황이다. 미국 새 정부의 정책, 가계부채 위험 등으로 한은의 저금리 정책이 실험대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은행 "2017년 통화정책 방향 완화기조 유지"
◆높아진 경제 비관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9일 회의를 열고 ‘2017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이같이 결정했다. 결정문에서 한은은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완만해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을 전망”이라며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방향에 대해서는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에 접근하도록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전년 동기 대비)로 한은의 물가목표치 2.0%에 줄곧 못 미쳤다. 소비와 투자의 수요가 부진한 것이 저물가 원인으로 꼽혔다. 경제심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은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까지 내렸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 돌발변수 속에 경제 비관론은 더 커졌다.

이날 정부마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6%로 크게 낮췄다. 21조원 규모의 경기보강책도 내놨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완화에 나선 만큼 한은은 통화완화를 통해 경기를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초저금리 언제까지 가능할까

문제는 대외여건이다. 미국은 자국의 경기호조에 힘입어 금리정상화 속도를 끌어올릴 태세다. 글로벌 금리상승기에 진입했다는 분석 속에 시장 금리도 크게 올랐다. 한은만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면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저금리 정책을 마냥 이어가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한은이 금융안정을 완화기조 못지않게 강조한 배경이다. 한은은 이날 “미 금리인상 등에 따른 시장변동성 증대, 가계부채 누증 등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에 유의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금통위 안에서도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폭인 8조8000억원 급증하는 등 가계빚 문제가 당장 걱정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부담, 미 금리인상 등으로 내년 중 (금리인하보다는) 금리동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시장에는 추가 인하 기대감도 남아 있다. 바클레이즈는 “소비자심리 저하가 소비와 투자 감소로 파급되기 시작하면 한은이 추가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도 “4차 산업 지원하겠다”

단기 부양책만으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이 정부와 한은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은은 성장잠재력 확충에 기여할 수 있는 부문을 금융중개지원대출 지원대상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중소기업에 한정하지 않고 4차 산업 등 신성장 부문에 저금리대출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한은도 보조를 맞추겠다는 취지다.

시장과의 소통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책 신호를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 좀 더 반영하는 한편 금통위 회의자료의 공개범위도 늘릴 방침이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