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 시대…다시 시작이다] "세계화, 더 이상 선 아니다"…선진국발 '보호무역 광풍'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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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제무역 '룰'이 달라진다
'윈윈'에서 '자국 우선'으로
비관세장벽 높여 수입 막고 수출 늘려 일자리 창출하기
G2 사이 줄타기 요구받는 한국, 대응 잘못 땐 '규제유탄' 우려
세계 교역 급증했지만…신흥국들 위주 혜택 돌아가
브렉시트·트럼프 집권 등 'WTO 균열' 현상 뚜렷해져
'윈윈'에서 '자국 우선'으로
비관세장벽 높여 수입 막고 수출 늘려 일자리 창출하기
G2 사이 줄타기 요구받는 한국, 대응 잘못 땐 '규제유탄' 우려
세계 교역 급증했지만…신흥국들 위주 혜택 돌아가
브렉시트·트럼프 집권 등 'WTO 균열' 현상 뚜렷해져
지난해 5월 미국 상무부는 현대제철의 내부식강판 등 한국산 철강제품에 반(反)덤핑 판정을 내렸다. 최고 47.8%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반덤핑 판정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세율이 과거 부과된 것보다 훨씬 높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미 상무부의 태도도 전과 달랐다.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쓰며 종류별로 가격은 어떤지 등 매우 상세한 자료를 며칠 내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종전엔 1주일 이상 시간을 줬다. 당황한 현대제철 측이 부랴부랴 자료를 준비했지만 미 상무부는 이마저도 부실하다며 인용하지 않았다. 대체 가능한 가용 정보(AFA)를 써서 덤핑비율을 계산했다. 통상 대체 가능 정보란 경쟁 관계인 미국 철강업체 측 자료다. 현대제철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류를 제대로 못 읽은 결과라는 것이다.
신(新)중상주의 시대가 열렸다. 타국과의 무역이 서로 이익을 얻는 ‘윈-윈(win-win)’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이 나의 불행이라는 ‘제로섬’ 시각이 확산되는 중이다. 외국산 제품 수입은 막고 자국 기업의 수출을 늘려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힘을 받고 있다.
세계화의 혜택 컸지만
세계화는 그동안 선(善)이었다. 관세·비(非)관세 장벽을 허물고 자본·노동을 자유롭게 이동시켜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은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6년까지 34% 수준이던 세계 가중평균실행관세율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거쳐 1997년 7월 이후 5.3%로 뚝 떨어졌다. 2006년부터는 2.7~3.1% 수준(세계은행 집계)에 머물고 있다.
세계 교역 규모는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5년 4조9014억달러에서 2015년 16조4415억달러(글로벌인사이트 집계)로 세 배 넘게 불었다. 연평균 6.5% 증가했다.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1980년 544억달러에 불과하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995년 3415억달러, 지난해는 1조7621억달러로 커졌다.
사람도 많이 이동했다. 유엔 국제이주보고서는 지난해 정주형 이민자 수가 2000년보다 41% 증가한 2억4400만명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세계의 생활 수준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신흥국 노동자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도전받는 WTO
그러나 세계화는 전례 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신흥국이 성장해 국가 간 불평등은 줄었으나 국가 내 불평등이 증가했다. 신흥국 내 중산층은 늘었지만 선진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랐다. 실질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계속돼 불만이 누적됐다. 불만은 표심으로 연결됐다. 팍팍한 살림살이와 공동체 와해가 모두 외국·외국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세를 얻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각종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럽과 자유로이 거래하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물 건너갈 처지다. 트럼프는 WTO 탈퇴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여년간 주요국 지도자가 이런 식의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은 적은 없었다. 세계화를 주도해 온 미국의 달라진 태도에 세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캐나다와 EU가 체결하려던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이 지난해 10월 막판에 거의 틀어질 뻔한 일 등은 모두 세계화를 거스르는 흐름을 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을 중심으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추진되는 것도 WTO라는 세계화의 구심점을 흔드는 요인이다.
한국의 전략은
현대제철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상징적이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은 종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비(非) 관세 형태의 장벽에 마주치게 될 전망이다.
구글 애플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유럽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거나, 미국이 독일 폭스바겐이나 도이치뱅크를 겨냥해 ‘벌금 폭탄’을 때리는 것도 큰 틀에서 비관세 장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통상 분쟁은 주로 미국과 중국, 주요 2개국(G2) 간에 벌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결코 일시적인 위협이 아니다. 교역 규모가 큰 중국 편을 들기도, 정치적 동맹인 미국 편을 들기도 곤란한 한국은 그 사이에서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중국과 함께 각종 관세나 ‘규제 폭탄’을 맞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비 절감 등 유형자산에 바탕을 둔 경쟁력보다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 형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권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한경·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
☞이미지 크게보기 미 상무부의 태도도 전과 달랐다.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쓰며 종류별로 가격은 어떤지 등 매우 상세한 자료를 며칠 내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종전엔 1주일 이상 시간을 줬다. 당황한 현대제철 측이 부랴부랴 자료를 준비했지만 미 상무부는 이마저도 부실하다며 인용하지 않았다. 대체 가능한 가용 정보(AFA)를 써서 덤핑비율을 계산했다. 통상 대체 가능 정보란 경쟁 관계인 미국 철강업체 측 자료다. 현대제철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류를 제대로 못 읽은 결과라는 것이다.
신(新)중상주의 시대가 열렸다. 타국과의 무역이 서로 이익을 얻는 ‘윈-윈(win-win)’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이 나의 불행이라는 ‘제로섬’ 시각이 확산되는 중이다. 외국산 제품 수입은 막고 자국 기업의 수출을 늘려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힘을 받고 있다.
세계화의 혜택 컸지만
세계화는 그동안 선(善)이었다. 관세·비(非)관세 장벽을 허물고 자본·노동을 자유롭게 이동시켜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은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6년까지 34% 수준이던 세계 가중평균실행관세율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거쳐 1997년 7월 이후 5.3%로 뚝 떨어졌다. 2006년부터는 2.7~3.1% 수준(세계은행 집계)에 머물고 있다.
세계 교역 규모는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5년 4조9014억달러에서 2015년 16조4415억달러(글로벌인사이트 집계)로 세 배 넘게 불었다. 연평균 6.5% 증가했다.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1980년 544억달러에 불과하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995년 3415억달러, 지난해는 1조7621억달러로 커졌다.
사람도 많이 이동했다. 유엔 국제이주보고서는 지난해 정주형 이민자 수가 2000년보다 41% 증가한 2억4400만명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세계의 생활 수준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신흥국 노동자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도전받는 WTO
그러나 세계화는 전례 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신흥국이 성장해 국가 간 불평등은 줄었으나 국가 내 불평등이 증가했다. 신흥국 내 중산층은 늘었지만 선진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랐다. 실질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계속돼 불만이 누적됐다. 불만은 표심으로 연결됐다. 팍팍한 살림살이와 공동체 와해가 모두 외국·외국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세를 얻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각종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럽과 자유로이 거래하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물 건너갈 처지다. 트럼프는 WTO 탈퇴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여년간 주요국 지도자가 이런 식의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은 적은 없었다. 세계화를 주도해 온 미국의 달라진 태도에 세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캐나다와 EU가 체결하려던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이 지난해 10월 막판에 거의 틀어질 뻔한 일 등은 모두 세계화를 거스르는 흐름을 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을 중심으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추진되는 것도 WTO라는 세계화의 구심점을 흔드는 요인이다.
한국의 전략은
현대제철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상징적이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은 종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비(非) 관세 형태의 장벽에 마주치게 될 전망이다.
구글 애플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유럽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거나, 미국이 독일 폭스바겐이나 도이치뱅크를 겨냥해 ‘벌금 폭탄’을 때리는 것도 큰 틀에서 비관세 장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통상 분쟁은 주로 미국과 중국, 주요 2개국(G2) 간에 벌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결코 일시적인 위협이 아니다. 교역 규모가 큰 중국 편을 들기도, 정치적 동맹인 미국 편을 들기도 곤란한 한국은 그 사이에서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중국과 함께 각종 관세나 ‘규제 폭탄’을 맞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비 절감 등 유형자산에 바탕을 둔 경쟁력보다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 형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권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한경·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