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법정화폐로 통용 시작
'달러 독주' 막을 기축통화로 주목
그리스·이탈리아 등 재정위기에 "경제 회복 걸림돌" 탈퇴 움직임
1일(현지시간)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유럽인의 결제 수단으로 유로화가 등장한 지 정확히 15년이 됐지만 유럽 각국에서 유로화 탄생을 축하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같이 전했다. 2010년 말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각국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럽통합의 상징으로서 유로화 위상이 많이 훼손됐고 위기가 지속되면서 앞으로도 유럽 각국 재정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쓸쓸한 15주년
미국 달러화에 이은 세계 2위 무역결제 통화인 유로화가 1일로 ‘15세 생일’을 맞았다. 유로화는 1999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11개국이 통화동맹을 결성하면서 등장했지만 법정화폐로서 시장에 유통된 것은 2002년 1월1일부터다.
한때 달러화를 대체할 기축통화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로는 유로존 각지에서 탈퇴론이 불붙으면서 장래를 낙관하기 힘든 처지가 됐다.
유로화는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경제·통화 통합의 근거가 마련됐고 1999년 유럽통화동맹이 출범하면서 유럽 11개국이 유로화를 채택했다. 처음에는 실물화폐 없이 각국 준비통화로 쓰이거나 금융기관 간 거래 등에만 한정됐다. 2001년 9월이 돼서야 유럽 각국 중앙은행에서 유로화 지폐(150억장)가 인쇄되고 주화(510억개)가 주조됐다.
2002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12개국에서 법정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유로화는 마르크, 프랑 등 기존 화폐를 대체하며 유럽 경제통합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탄탄대로를 걸었다. 유럽대륙 3억4000만명이 결제수단으로 상용했고 세계 준비통화의 27%가 유로화를 썼다.
2002년 달러당 1.1064유로로 출발한 유로화 값은 2008년 7월 달러당 0.6366유로까지 치솟았다. ‘라인강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던 마르크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택한 독일에서조차 ‘토이로(독일어로 ‘비싸다’는 뜻인 ‘토이어’와 유로의 합성어)’로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유로존 회원국도 꾸준히 늘어 2016년 말 현재 19개국에 달했다.
◆장담할 수 없는 내일
굳건할 것만 같던 유로화 위상에 금이 간 것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화 사용 남유럽 국가가 줄줄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부터다. 북유럽과 남유럽 국가 간 경제력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면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유럽은 채무국 부채탕감(헤어컷)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매입 프로그램 등에도 불구하고 5년 넘게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 불안이 상시화되면서 유럽 각국의 유로존 탈퇴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탈리아 제1야당인 오성운동은 유로존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주장했다.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도 “집권하면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때 터부시되던 유로존 탈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클레멘스 퓌스트 독일 Ifo경제연구소 소장은 “이탈리아 경제수준이 유로화를 도입한 2000년대 초반보다 나아진 게 없다면 이탈리아 국민이 유로존을 떠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로화에 대한 유럽인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로존 각국 1만7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유로화에 대한 긍정여론은 56%에 불과했다. ‘여행할 때 환전할 필요가 없어 좋다’는 정도가 장점으로 꼽혔다. 마르첼 프라처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은 “재정위기 이후 각국 정치권이 유로화 비난을 강화하면서 유로화도 ‘위기 2.0’에 직면하게 됐다”고 평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