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다사다난(多事多難)’ 그 자체였다. 업계를 이끌던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은 해외 제약사와 맺은 기술수출 계약이 무산되면서 고개를 숙였다. 코오롱생명과학과 동아에스티는 대규모 기술수출로 한국 신약 기술의 저력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새해를 맞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고 있다. 신약 연구개발(R&D)과 글로벌 진출만이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경제신문은 비상(飛上)을 꿈꾸는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신약 도전 노력을 소개한다.

4일 세종특별자치시 명학산업단지에서는 오는 5월 준공을 목표로 SK바이오텍 생산 공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SK(주)의 자회사인 SK바이오텍은 노바티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 제약사에 원료의약품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곳에서 생산한 원료의약품은 당뇨치료제,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설비를 운영 중인 SK바이오텍은 신규 공장을 짓는 데 700억원을 투자했다.

SK바이오텍 관계자는 “기존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공장 가동률이 100%에 달하는 데다 수주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2020년까지 연 80만L로 생산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 "미국·유럽기업 M&A…글로벌 바이오 강자로 도약"
“제약·바이오는 미래 먹거리”

SK그룹이 제약·바이오사업을 키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은 국내 대기업으로는 드물게 원료의약품부터 백신 등 완제의약품, 신약 개발까지 광범위한 제약·바이오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사업 강화를 통해 세계적인 제약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SK의 원료의약품 사업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원료의약품 전문기업인 SK바이오텍은 2015년 그룹 내 혁신신약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SK바이오팜에서 분할된 회사다. 세계에서 최초로 고품질 원료의약품을 균일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저온 연속공정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술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50% 증가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고속 성장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집중

SK그룹 내 제약·바이오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은 SK바이오팜이다. SK바이오팜은 중추신경계 혁신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뇌전증 신약(YKP3089)은 미국에서 임상시험 3상이 진행 중이다. 약효가 뛰어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3상 시험 내 약효시험을 면제받았다. 안전성만 입증하면 된다. 치료제가 상용화되면 미국에서만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뇌종양 치료제 등 항암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SK가 성공 가능성이 낮은 신약 개발에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최태원 SK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신약 개발 조직을 지주회사 직속으로 둘 정도로 최 회장의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은 높다. SK그룹은 2015년 8월 통합 지주회사를 출범한 뒤 제약·바이오 사업을 5대 핵심 성장 사업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SK(주)는 지난해 손자회사였던 SK바이오텍의 지분을 100%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세종공장 설비 증설 등을 위해 400억원의 유상증자도 결정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미국, 유럽 원료의약품 전문기업 인수합병(M&A)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며 “신약 개발은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투자와 장기적인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룹 내 분위기”라고 전했다.

바이오신약 개발에 초점

SK케미칼은 백신, 혈우병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독감 바이러스 4개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4가(價) 독감 백신’을 세계 최초로 유정란 방식이 아닌 세포배양 방식으로 개발했다. SK케미칼은 대상포진 백신 개발을 완료하고 올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앞두고 있다.

호주 제약사에 기술 수출한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도 FDA 허가를 받고 현지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지난달 캐나다에서도 앱스틸라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며 “올해는 유럽 허가 획득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