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18)] 아송구년(我送舊年) 여영신년(汝迎新年)
100여년 전의 연하장은 닥종이에 정성스럽게 먹을 갈아 글씨를 썼을 것이다. 여덟 글자라는 절제미로써 더 높은 완성도를 추구했으리라. 발신인은 일본 가마쿠라(鎌倉)에 소재한 원각사(圓覺寺) 관장(최고어른)인 샤구소우엔(釋宗演·1860~1919) 선사다. 선사는 교토(京都)의 하나조노(花園)대학 학장을 지냈다. 선(禪)을 ‘젠(ZEN)’이란 명칭으로 미국과 유럽사회에 처음 소개했으며, 그 과업은 제자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1966)로 이어졌다. 수신인은 조선 변산반도 월명암(月明庵)의 백학명(白鶴鳴·1867~1929) 선사다. 두 선사는 1915년 원각사 방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고수끼리는 긴말이 필요 없다. 이 인연으로 이듬해 1916년 새해 인사와 안부를 묻는 한시 연하장이 도착한 것이다.

구년과 신년은 섣달 그믐날(12월31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바뀐다. 12시는 마지막 시각이지만 0시는 새로 시작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12시가 곧 0시다. 따라서 끝인 동시에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학명 스님은 ‘세월(歲月)’이라는 시를 통해 “끝과 시작을 구별해 말하지 말라(妄道始終分兩頭)”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년의 하늘을 보고 또 신년의 하늘을 봐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試看長天何二相)”고 부연설명 삼아 한 줄을 더 보탰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는 구년은 구년이고 신년은 신년이다. 인쇄체로 박은 ‘영혼 없는’ 연하장을 몇 통 받았고, 마지막 해넘이와 첫 해돋이를 겸하고자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문수봉 자락에서 올해의 마지막 일몰을 감상하고 일출을 보기 위해 대남문(大南門) 인근의 사찰에서 신발끈을 풀고서 하루를 묵었다. 신년의 총총한 새벽별 아래 모자에 랜턴을 단 해돋이 참가 행렬이 산 아래까지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정작 해 뜰 무렵에는 구름이 희뿌옇게 산과 하늘을 가린다. 이를 어쩌나! 학명 스님 표현을 빌리자면 작년 해와 올해의 해가 다를 리 없으니 어제 해넘이 감동을 오늘 아침 해돋이 느낌으로 대치하면 될 터이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