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안개 속 고원도시 마음의 평온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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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순수함 간직한 매홍손
무릉도원 보며 국수 한 그릇…"신선이 따로 없네"
카오산로드 온 듯, 여행객 붐비는 빠이…스쿠터 타고 마을 곳곳 누벼
쿵마이삭 승려들의 탁발 행렬
마을 곳곳 공양 준비로 분주
사람들의 기도에 절로 숨죽여
승려들의 맨발 앞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사람들.
그들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듯했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마주한 듯 과거로 '타임슬립'한
팸복 마을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무릉도원 보며 국수 한 그릇…"신선이 따로 없네"
카오산로드 온 듯, 여행객 붐비는 빠이…스쿠터 타고 마을 곳곳 누벼
쿵마이삭 승려들의 탁발 행렬
마을 곳곳 공양 준비로 분주
사람들의 기도에 절로 숨죽여
승려들의 맨발 앞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사람들.
그들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듯했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마주한 듯 과거로 '타임슬립'한
팸복 마을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매홍손(maehongson)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380㎞ 떨어진 곳으로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고원지대다. 산으로 둘러싸인 매홍손은 태국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낯설지만 평온하고 아늑한 정취가 가득해 오래 머물러도 질리지 않는다. 산간지역의 수려한 자연과 시골마을 특유의 따뜻함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매홍손은 태국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안개 가득한 고원도시 매홍손
60명 남짓의 승객을 태운 프로펠러 비행기는 안개를 뚫고, 능선을 곡예하듯 넘는다. 창밖 풍경은 첩첩이 산이다. 사람이 아기를 품듯 산이 마을을 품었다. 마을은 작다. 작정하면 하늘에서 지붕의 수를 셀 수 있을 것 같다. 2㎞ 남짓한 길이의 작은 활주로에 발을 딛자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고산지대라 덜 덥고 덜 습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눅눅하다. 열대우림이 쑥쑥 자라기에도 사람들이 쉬이 지치기에도 이만한 기후는 없을 듯하다.
조용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찾았다. 가이드는 해발 1500m 높이에 있는 사원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사원의 이름은 왓 프라탓 도이 콩무(Wat Phrathat Doi Kongmu). ‘콩무 언덕의 프라탓 사원’이라는 뜻으로 샨족 건축 양식을 따른 곳이다. 샨족은 중국 윈난성에서 이주해 10세기께 매홍손이 속한 미얀마 고원지대에 정착한 민족이다. 사원은 마을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불상과 탑, 소원을 걸어둔 나무 팻말 빼곡한 사당, 기념품을 판매하는 몇몇 노점과 전망대, 카페 등이 모여 있다. 여행자들은 매홍손의 전망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총캄 연못을 중심으로 사원과 관공서, 학교, 공항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럽다.
왓총캄 사원서 기도하는 사람들 마을로 내려와 연못 옆 왓총캄(watchokham) 사원을 찾았다. 작고 아름다운 사원 내부는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불경을 온몸에 문신한 스님이 경전을 나직하게 읽는 동안 사람들은 음식을 공양하고, 종이를 오려 연꽃을 만들고, 댓잎으로 그릇을 만들고, 꽃 장식을 한다. 모두의 염원이 가득한 신성한 풍경 안으로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제 집 누비듯 사원 안을 누비지만 어느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순간, 정적이 깨졌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 중 한 사람을 호되게 꾸짖는다. 태국어는 모르지만 호통의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반바지를 입고 사원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일행을 쏘아보는 그녀의 눈은 원망으로 가득했다. 경내는 길 고양이는 들어가도 팔다리 내놓은 옷차림의 여자는 들어설 수 없다. 그것이 부처를 공경하는 방법이며 공유하는 스님들을 위한 배려다. 다 알겠지만 스님의 몸에 손대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통빼 대나무 다리 위의 승려들
새벽 4시 반, 공항이 있는 매홍손 마을에서 북쪽으로 30분을 달려 쿵마이삭(kung mai saak) 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탁발 행렬과 태국에서 가장 긴 수통빼 대나무 다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탁발은 사원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통빼 대나무 다리(su tong pae bamboo bridge)에서 시작하는데 다리의 유래가 아름답다. 마을과 사원 사이에는 드넓은 논이 강처럼 펼쳐져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논 주인이 땅을 마을에 기증하는 대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빌렸다. 마을 주민들은 합심해 대나무를 엮어 다리를 놓았고, 이 덕분에 매일 새벽 탁발을 나서는 승려들의 발걸음은 한결 수월해졌단다. 길이 500m의 다리는 사원과 마을을, 승려와 마을 사람들을, 현실과 이상향을 연결하는 마을의 상징이 됐다.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자 사원 아래에서 갈색 가사를 입은 승려와 수도승의 행렬이 보였다. 가장 나이 많은 승려가 선두에 서고, 열 명 남짓 승려들이 일렬로 뒤따라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누렁이 한 마리와 검둥개 한 마리가 승려들과 동행한다. 그 품새가 마치 경호원처럼 위풍당당하다. 탁발 행렬을 따랐다. 오전 6시도 안 된 이른 시각, 마을 길 곳곳에는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어느 집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있고, 어느 집은 불심 가득한 어머니 홀로 앉아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모두가 함께 나직한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마을은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승려들의 맨발 앞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사람들. 그들이 염원을 소리 내 말하는 순간은 신기하게 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듯했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인연이 닿는 거룩한 순간을 혹여 깨뜨릴까 싶어 발걸음은 물론 숨소리마저 조심스럽다.
라후와 샨족의 마을 자보 험준한 산길은 끊임없이 굽이쳤다. 굽은 길을 달리길 3시간, 자보(jabo)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중국 윈난에서 망명한 라후족과 샨족이 모여 사는 정착촌이다. 태국 현지인들은 이곳을 난민촌이라 부르지만, 여행자들은 라후족과 샨족의 생활상을 엿보기 위해 찾는다. 마을 사람들은 한꺼번에 몰려든 이방인들이 익숙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집으로 들어와 구경하라며 손짓한다. 대나무로 이어 올린 집의 살림은 소박하고 소소하다.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마을의 정취만큼 맑고 아름답다. 마을엔 그 흔한 태국 레스토랑 하나 없다. 오로지 중국 레스토랑이 몇 군데 있다.
그중 으뜸은 바로 산꼭대기에 있는 국수집. 중국식 고기국수를 파는데 이름은 따로 없고 사람들은 이곳을 자보 국수집(jabo noodle restaurant)이라고 부른다. 내부로 들어서면 겹겹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진다. 벽 한 면이 완전히 뚫려 있고, 난간 위에 일렬로 가늘고 긴 식탁을 마련했다. 국수도 맛있지만, 난간에 발을 걸치고 천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어서 유명해진 집이다. 국수를 먹으며 산허리로 구름이 가로지르는 무릉도원 같은 풍광을 바라보는 순간 신선이 된 듯하다.
시간이 멈춘 마을 팸복
자보 마을에서 네 시간가량 차로 달리면 팸복(Phaem Bok) 마을에 닿는다. 매홍손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논밭이 펼쳐진 마을로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 채집과 같은 에코투어 프로그램이 가능한 곳이다. 대나무 다리에 올라 산세에 둘러싸인 전원 풍경을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진짜 귀한 풍경은 마을의 일상에서 빛난다.
마을은 추억 속 시골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 곁에서 철모르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느라 마냥 신이 났다. 촌부는 자전거에 닭장을 싣고 시골길을 달린다. 마당에서 뛰쳐나온 개가 학교 다녀온 소녀에게 꼬리를 흔들고, 지붕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에는 구수한 밥 냄새가 배어 있다. 할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마른 풀로 빗자루를 만들고, 아주머니는 도리깨와 키를 써서 쌀을 도정한다.
이 모든 풍경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의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오른 듯한 기분이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연신 손짓으로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가만히 바라보자 부엌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는 갓 지은 밥을 내주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순간 뭉클해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언제든 팸복 마을에서 할머니를 만난 순간이라고 말한다. 볼 것 없는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은 따뜻한 밥을 건넨 할머니 덕분에 온전히 아름다워졌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 팸복 마을의 읍내가 빠이(pai)다. 읍내라 하기엔 다소 먼 거리다. 구불구불 산길을 차로 40분을 달려야 닿는다. 빠이는 매홍손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다. 방콕에 카오산로드가 있다면 매홍손에는 빠이가 있다고 말할 만하다. 물론, 카오산로드에 비해 훨씬 순박하고 때가 덜 탔다. 3시간 떨어진 치앙마이가 번화하다고 느끼는 여행자들이 순수와 여유를 찾아 좀 더 깊숙이 숨어드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빠이에 저렴한 거처를 마련하고 스쿠터를 빌려 타고 매홍손 산간마을과 국립공원, 사원 등을 여행한다. 빠이는 온종일 활기차다. 먹거리 노점상들, 기념품 숍, 마사지 숍, 카페, 펍 등이 밤낮없이 불을 밝힌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모여 뿜어내는 열기와 자유로운 정취가 빠이의 매력이다.
메홍손(태국)=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여행정보
방콕이나 치앙마이에서 매홍손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빠이에도 공항이 있지만, 태국 북부 산간의 자연과 아름다운 마을을 두루 둘러보려면 매홍손에서 빠이까지는 차로 여행하는 게 좋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멀미약을 챙겨가는 게 좋다. 고원지역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많이 껴 습한 편이다. 빠이 시내에는 큰 개가 돌아다닌다. 노점에서 먹을 것을 사 먹고 있으면 꼬리치며 다가오는데 대부분 순하니 너무 겁먹지 말자.
안개 가득한 고원도시 매홍손
60명 남짓의 승객을 태운 프로펠러 비행기는 안개를 뚫고, 능선을 곡예하듯 넘는다. 창밖 풍경은 첩첩이 산이다. 사람이 아기를 품듯 산이 마을을 품었다. 마을은 작다. 작정하면 하늘에서 지붕의 수를 셀 수 있을 것 같다. 2㎞ 남짓한 길이의 작은 활주로에 발을 딛자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고산지대라 덜 덥고 덜 습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눅눅하다. 열대우림이 쑥쑥 자라기에도 사람들이 쉬이 지치기에도 이만한 기후는 없을 듯하다.
조용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찾았다. 가이드는 해발 1500m 높이에 있는 사원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사원의 이름은 왓 프라탓 도이 콩무(Wat Phrathat Doi Kongmu). ‘콩무 언덕의 프라탓 사원’이라는 뜻으로 샨족 건축 양식을 따른 곳이다. 샨족은 중국 윈난성에서 이주해 10세기께 매홍손이 속한 미얀마 고원지대에 정착한 민족이다. 사원은 마을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불상과 탑, 소원을 걸어둔 나무 팻말 빼곡한 사당, 기념품을 판매하는 몇몇 노점과 전망대, 카페 등이 모여 있다. 여행자들은 매홍손의 전망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총캄 연못을 중심으로 사원과 관공서, 학교, 공항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럽다.
왓총캄 사원서 기도하는 사람들 마을로 내려와 연못 옆 왓총캄(watchokham) 사원을 찾았다. 작고 아름다운 사원 내부는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불경을 온몸에 문신한 스님이 경전을 나직하게 읽는 동안 사람들은 음식을 공양하고, 종이를 오려 연꽃을 만들고, 댓잎으로 그릇을 만들고, 꽃 장식을 한다. 모두의 염원이 가득한 신성한 풍경 안으로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제 집 누비듯 사원 안을 누비지만 어느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순간, 정적이 깨졌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 중 한 사람을 호되게 꾸짖는다. 태국어는 모르지만 호통의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반바지를 입고 사원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일행을 쏘아보는 그녀의 눈은 원망으로 가득했다. 경내는 길 고양이는 들어가도 팔다리 내놓은 옷차림의 여자는 들어설 수 없다. 그것이 부처를 공경하는 방법이며 공유하는 스님들을 위한 배려다. 다 알겠지만 스님의 몸에 손대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통빼 대나무 다리 위의 승려들
새벽 4시 반, 공항이 있는 매홍손 마을에서 북쪽으로 30분을 달려 쿵마이삭(kung mai saak) 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탁발 행렬과 태국에서 가장 긴 수통빼 대나무 다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탁발은 사원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통빼 대나무 다리(su tong pae bamboo bridge)에서 시작하는데 다리의 유래가 아름답다. 마을과 사원 사이에는 드넓은 논이 강처럼 펼쳐져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논 주인이 땅을 마을에 기증하는 대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빌렸다. 마을 주민들은 합심해 대나무를 엮어 다리를 놓았고, 이 덕분에 매일 새벽 탁발을 나서는 승려들의 발걸음은 한결 수월해졌단다. 길이 500m의 다리는 사원과 마을을, 승려와 마을 사람들을, 현실과 이상향을 연결하는 마을의 상징이 됐다.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자 사원 아래에서 갈색 가사를 입은 승려와 수도승의 행렬이 보였다. 가장 나이 많은 승려가 선두에 서고, 열 명 남짓 승려들이 일렬로 뒤따라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누렁이 한 마리와 검둥개 한 마리가 승려들과 동행한다. 그 품새가 마치 경호원처럼 위풍당당하다. 탁발 행렬을 따랐다. 오전 6시도 안 된 이른 시각, 마을 길 곳곳에는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어느 집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있고, 어느 집은 불심 가득한 어머니 홀로 앉아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모두가 함께 나직한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마을은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승려들의 맨발 앞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사람들. 그들이 염원을 소리 내 말하는 순간은 신기하게 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듯했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인연이 닿는 거룩한 순간을 혹여 깨뜨릴까 싶어 발걸음은 물론 숨소리마저 조심스럽다.
라후와 샨족의 마을 자보 험준한 산길은 끊임없이 굽이쳤다. 굽은 길을 달리길 3시간, 자보(jabo)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중국 윈난에서 망명한 라후족과 샨족이 모여 사는 정착촌이다. 태국 현지인들은 이곳을 난민촌이라 부르지만, 여행자들은 라후족과 샨족의 생활상을 엿보기 위해 찾는다. 마을 사람들은 한꺼번에 몰려든 이방인들이 익숙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집으로 들어와 구경하라며 손짓한다. 대나무로 이어 올린 집의 살림은 소박하고 소소하다.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마을의 정취만큼 맑고 아름답다. 마을엔 그 흔한 태국 레스토랑 하나 없다. 오로지 중국 레스토랑이 몇 군데 있다.
그중 으뜸은 바로 산꼭대기에 있는 국수집. 중국식 고기국수를 파는데 이름은 따로 없고 사람들은 이곳을 자보 국수집(jabo noodle restaurant)이라고 부른다. 내부로 들어서면 겹겹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진다. 벽 한 면이 완전히 뚫려 있고, 난간 위에 일렬로 가늘고 긴 식탁을 마련했다. 국수도 맛있지만, 난간에 발을 걸치고 천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어서 유명해진 집이다. 국수를 먹으며 산허리로 구름이 가로지르는 무릉도원 같은 풍광을 바라보는 순간 신선이 된 듯하다.
시간이 멈춘 마을 팸복
자보 마을에서 네 시간가량 차로 달리면 팸복(Phaem Bok) 마을에 닿는다. 매홍손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논밭이 펼쳐진 마을로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 채집과 같은 에코투어 프로그램이 가능한 곳이다. 대나무 다리에 올라 산세에 둘러싸인 전원 풍경을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진짜 귀한 풍경은 마을의 일상에서 빛난다.
마을은 추억 속 시골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 곁에서 철모르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느라 마냥 신이 났다. 촌부는 자전거에 닭장을 싣고 시골길을 달린다. 마당에서 뛰쳐나온 개가 학교 다녀온 소녀에게 꼬리를 흔들고, 지붕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에는 구수한 밥 냄새가 배어 있다. 할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마른 풀로 빗자루를 만들고, 아주머니는 도리깨와 키를 써서 쌀을 도정한다.
이 모든 풍경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의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오른 듯한 기분이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연신 손짓으로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가만히 바라보자 부엌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는 갓 지은 밥을 내주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순간 뭉클해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언제든 팸복 마을에서 할머니를 만난 순간이라고 말한다. 볼 것 없는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은 따뜻한 밥을 건넨 할머니 덕분에 온전히 아름다워졌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 팸복 마을의 읍내가 빠이(pai)다. 읍내라 하기엔 다소 먼 거리다. 구불구불 산길을 차로 40분을 달려야 닿는다. 빠이는 매홍손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다. 방콕에 카오산로드가 있다면 매홍손에는 빠이가 있다고 말할 만하다. 물론, 카오산로드에 비해 훨씬 순박하고 때가 덜 탔다. 3시간 떨어진 치앙마이가 번화하다고 느끼는 여행자들이 순수와 여유를 찾아 좀 더 깊숙이 숨어드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빠이에 저렴한 거처를 마련하고 스쿠터를 빌려 타고 매홍손 산간마을과 국립공원, 사원 등을 여행한다. 빠이는 온종일 활기차다. 먹거리 노점상들, 기념품 숍, 마사지 숍, 카페, 펍 등이 밤낮없이 불을 밝힌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모여 뿜어내는 열기와 자유로운 정취가 빠이의 매력이다.
메홍손(태국)=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여행정보
방콕이나 치앙마이에서 매홍손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빠이에도 공항이 있지만, 태국 북부 산간의 자연과 아름다운 마을을 두루 둘러보려면 매홍손에서 빠이까지는 차로 여행하는 게 좋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멀미약을 챙겨가는 게 좋다. 고원지역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많이 껴 습한 편이다. 빠이 시내에는 큰 개가 돌아다닌다. 노점에서 먹을 것을 사 먹고 있으면 꼬리치며 다가오는데 대부분 순하니 너무 겁먹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