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노동개혁 4법 등 ‘경제활성화법’으로 거론되는 18개 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런 법안들은 과도한 규제를 해소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청년실업 등 고용대란을 막으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법안들이라는 점에서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야권에서는 경제민주화관련법 처리를 우선시할 태세다.

경제민주화관련법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주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이다. 이 중에는 합리적인 법안도 있지만 집중투표제도 강제와 같이 기업에 부담만 주고 실효성은 크지 않은 법안도 적지 않다. 기업규제는 기본적으로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관련법안은 다분히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 측면이 있다. 정치논리에 따른 법안이 여과 없이 그대로 입법으로 이어지게 되면 두고두고 우리나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2%대로 주저앉으면서 세계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수출이 58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제조업 가동률, 가계부채 비율 같은 주요 경제지표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직전보다 더 나쁘다. 현 경제상황을 보면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경영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입법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 관련 불상사가 끊이지 않으며, 편법적이고 반칙적인 경영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최순실 사태에서 보듯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벌을 상대로 자금모집을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경영자의 책임을 엄격히 묻고 주주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입법을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유로 피해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경제현실을 도외시한 입법이 추진되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현 경제현실을 반영한 균형 잡힌 입법이 가능하도록 건의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법학자나 변호사와 같은 법률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범자인 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상공회의소나 상장회사협의회와 같은 경제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단체가 제 역할을 하려면 회원사의 이익만 대변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해서야 여느 이익집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기업은 아무리 부당한 법률이라도 사업을 접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그 부당성을 말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도가 아닌 법안에 대해서는 경제단체가 기업을 대신해 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법률은 반대하는 회원사가 있으면 설득을 해서라도 입법이 가능하도록 앞장서야 한다. 이 길은 쉽지 않겠지만 길게 보면 회원사도 살고 경제단체도 살고 우리나라 경제도 사는 길이다.

대기업그룹 회원사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가 여당의 분열로 거야(巨野)가 탄생하면서 낭패를 보고 있는 전경련으로부터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업가들도 건강하고 힘 있는 경제단체의 탄생은 자신들에 대해서도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한국기업법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