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미국·중국이 무역전쟁 벌이면 중국의 탄약은?
언론의 논조가 달라졌다. 지난 연말까지는 ‘가능성’이었다. 지금은 ‘예고’ ‘전운’ ‘신호탄’이 제목에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매파 일색으로 짜인 미국의 통상라인은 위기감을 한층 높였다. 두 나라가 싸운다면 한국엔 일파만파 격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섣부른 예단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타당성을 살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정밀한 대응계획을 세우는 것이 과제다.

지난해 미국 대선전 초반에 중국은 트럼프에 낙관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더 적합한 대화 상대라고 생각한 듯하다. 유세 종반에 트럼프의 대중(對中) 압박이 심해지자 긴장단계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당선 후 대중 강경파들로 핵심 자리가 채워지자 지금 중국은 세부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가 그 중심에 있다.

강대국 간 무역전쟁은 ‘한다’와 ‘안 한다’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양상을 예측해야 한다. 네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본다. 우선 무역 전면전 시나리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4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맞대응하는 것이다. 악몽이라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다음은 비대칭적 공격 시나리오. 미국이 중국산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은 비대칭 공격에 나선다.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선택적 공격 시나리오가 있다. 미국은 중국산에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M&A)을 보다 강하게 저지한다. 중국은 미국산 제품 구매를 축소하고 비관세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시나리오는 ‘찻잔 속 태풍’. 양국이 말폭탄의 설전을 하면서도 타협을 모색하는 경우다.

전면전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 상대를 공격하는 만큼 자국도 피해가 막심하다. 미국은 45% 관세로 값이 비싸진 중국 제품을 자국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 중국 진출 자국 기업이 만든 제품을 수입하는데도 과연 45% 관세를 매길 수 있을까? 중국과 치고받으면 세계 최대의 항공기 시장이 날아가버릴 게 뻔한데 이를 감수할 수 있을까? 중국은 앞으로 10년간 세계 전체 수요의 3분의 1인 5964대의 새 항공기가 필요하다.

중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국에 절실한 세계 최대의 상품시장이자 기술 도입처, M&A 시장인 미국이 닫히는 것을 보고만 있으려 할까? 중국이 지난달부터 ‘양패구상(兩敗俱傷: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을 거론하며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하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국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비대칭적 공격이나 선택적 공격으로 시작해 점차 타협 모드로 넘어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선행변수이고 중국은 결과변수가 될 것이다. 중국이 미국보다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먼저 움직이면 중국은 비대칭적 혹은 선별적으로 대응 카드를 낼 것이다.

중국 상무부가 한창 준비하고 있을 ‘탄약’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국 재무부 국장 출신으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인 게리 후프바우어의 관측은 이렇다. 중국은 미국의 취약한 부분을 집중 공격한다는 것이다. 292대의 보잉 항공기 주문을 취소하고 콩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막을 수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다국적기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중국에는 꿈이 있다. 산업 구조조정과 지속 성장,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한 ‘중국몽(中國夢)’ 달성이다.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국은 무역전쟁을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다.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