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설계] 뭘 고를까 망설이는 당신…'휴리스틱'에만 의존하면 큰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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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영의 재무설계 가이드 <24> 양날의 칼 휴리스틱
휴리스틱은 문제 단순화해 처리하는 행동법칙
정보·대안의 홍수 속에서 의사결정할 때 유리한 도구지만
직관적 판단에 의존 한계, 비합리적 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휴리스틱은 문제 단순화해 처리하는 행동법칙
정보·대안의 홍수 속에서 의사결정할 때 유리한 도구지만
직관적 판단에 의존 한계, 비합리적 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8×7×6×5×4×3×2×1은 얼마인가? 1×2×3×4×5×6×7×8은 얼마인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이 실험에서 사용한 질문이다. 카너먼은 응답자들이 연필이나 계산기를 쓰지 못하게 하고, 즉시 어림짐작으로 답하도록 했다. 정답은 두 질문 모두 4만320이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의 답변은 평균 2250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512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 몇 개 숫자만 속셈을 하고 나머지를 적당히 감안해서 최종 예측치를 만들어낸다. 이때 첫 번째 질문처럼 큰 숫자부터 시작되면 예측치가 더 커지고, 두 번째 질문과 같이 작은 숫자에서 출발하면 예측치가 작아진다. 카너먼은 이를 ‘기준점 효과’로 명명했다. 이 질문들에서 기준점은 처음 몇 개 숫자를 속셈한 값이다.
기준점 효과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휴리스틱’의 일종이다. 휴리스틱은 주어진 문제를 단순화해서 처리하는 행동법칙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쉬운 방법, 간편법, 어림셈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휴리스틱을 ‘불완전하지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복잡한 선택 상황에서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다 보니 비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답이 같은 위의 질문들에 대해 응답자들이 매우 다른 예측치를 내놓은 것도 기준점 효과 휴리스틱 탓이다.
그렇다고 휴리스틱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정보와 대안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제한된 능력을 고려할 때 의사결정의 유용한 도구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앙각(仰角) 휴리스틱(gaze heuristic)’은 야구 경기의 외야수가 높이 뜬 공을 어떻게 정확하게 잡아내는지를 설명한다.
공이 어디에 떨어질지 정확히 예측하려면 공의 속도, 각도, 풍향과 세기 등에 대한 정보를 구해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외야수는 그런 정보나 계산없이, 날아오는 공을 올려다보는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앙각 휴리스틱을 사용해 공의 낙하지점 근처로 달려간다.
금융상품의 복잡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휴리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요량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당해 혼란스러워지고 정보탐색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속하고 간결한 의사결정을 위해 휴리스틱을 사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인지 휴리스틱’이다. 진열장에 놓인 수많은 우유 중에서 어떤 우유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던 소비자가 “우유는 ‘OO우유’가 대표 브랜드니까…”라는 생각으로 선택 대상을 좁히는 것처럼, 투자할 펀드를 골라야 하는 금융소비자는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유명한 자산운용사 브랜드를 떠올림으로써 선택의 수고로움을 줄이려 한다. 인지 휴리스틱은 자신이 알고 있어서 익숙한 대상을 고집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낯선 마트에서 상품을 찾느라 헤매는 게 싫어서 익숙한 마트만 가는 것처럼, 금융소비자가 거래 중인 특정 금융회사만을 계속 이용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제거 휴리스틱’은 선택 대안이 너무 많을 경우 가장 중요한 속성을 결정하고 그 속성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안을 제거해가는 방식이다. 주방세제 선택에서 ‘싸고 양 많은 것’이란 속성을 최우선시 한다거나 금융투자상품을 고를 때 수익률을 첫손으로 꼽는 경우다.
소비자는 정보 과잉 상황에서 다른 정보는 무시하고 자신에게 선별적으로 각인된 정보만 활용하는 ‘하나의 단서에 근거한 휴리스틱’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도씨유가 다른 기름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은 소비자가 포도씨유만을 구매한다거나, 해외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친구들이 있는 금융소비자가 해외 펀드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판매원이 추천하는 상품이라면 “그럭저럭 쓸만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만족하면서 선택하는 것이 ‘만족화 휴리스틱’이다. 금융소비자는 은행 직원이 요새 잘나가는 상품이라고 추천할 때 선뜻 가입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휴리스틱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차선책’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불필요한 정보를 무시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도구’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휴리스틱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일상적인 소비 의사결정과 달리 금융상품 관련 의사결정은 자주 하지 않는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휴리스틱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금융소비자로서 어떤 휴리스틱을 사용하는지를 신중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이 실험에서 사용한 질문이다. 카너먼은 응답자들이 연필이나 계산기를 쓰지 못하게 하고, 즉시 어림짐작으로 답하도록 했다. 정답은 두 질문 모두 4만320이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의 답변은 평균 2250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512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 몇 개 숫자만 속셈을 하고 나머지를 적당히 감안해서 최종 예측치를 만들어낸다. 이때 첫 번째 질문처럼 큰 숫자부터 시작되면 예측치가 더 커지고, 두 번째 질문과 같이 작은 숫자에서 출발하면 예측치가 작아진다. 카너먼은 이를 ‘기준점 효과’로 명명했다. 이 질문들에서 기준점은 처음 몇 개 숫자를 속셈한 값이다.
기준점 효과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휴리스틱’의 일종이다. 휴리스틱은 주어진 문제를 단순화해서 처리하는 행동법칙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쉬운 방법, 간편법, 어림셈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휴리스틱을 ‘불완전하지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복잡한 선택 상황에서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다 보니 비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답이 같은 위의 질문들에 대해 응답자들이 매우 다른 예측치를 내놓은 것도 기준점 효과 휴리스틱 탓이다.
그렇다고 휴리스틱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정보와 대안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제한된 능력을 고려할 때 의사결정의 유용한 도구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앙각(仰角) 휴리스틱(gaze heuristic)’은 야구 경기의 외야수가 높이 뜬 공을 어떻게 정확하게 잡아내는지를 설명한다.
공이 어디에 떨어질지 정확히 예측하려면 공의 속도, 각도, 풍향과 세기 등에 대한 정보를 구해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외야수는 그런 정보나 계산없이, 날아오는 공을 올려다보는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앙각 휴리스틱을 사용해 공의 낙하지점 근처로 달려간다.
금융상품의 복잡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휴리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요량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당해 혼란스러워지고 정보탐색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속하고 간결한 의사결정을 위해 휴리스틱을 사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인지 휴리스틱’이다. 진열장에 놓인 수많은 우유 중에서 어떤 우유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던 소비자가 “우유는 ‘OO우유’가 대표 브랜드니까…”라는 생각으로 선택 대상을 좁히는 것처럼, 투자할 펀드를 골라야 하는 금융소비자는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유명한 자산운용사 브랜드를 떠올림으로써 선택의 수고로움을 줄이려 한다. 인지 휴리스틱은 자신이 알고 있어서 익숙한 대상을 고집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낯선 마트에서 상품을 찾느라 헤매는 게 싫어서 익숙한 마트만 가는 것처럼, 금융소비자가 거래 중인 특정 금융회사만을 계속 이용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제거 휴리스틱’은 선택 대안이 너무 많을 경우 가장 중요한 속성을 결정하고 그 속성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안을 제거해가는 방식이다. 주방세제 선택에서 ‘싸고 양 많은 것’이란 속성을 최우선시 한다거나 금융투자상품을 고를 때 수익률을 첫손으로 꼽는 경우다.
소비자는 정보 과잉 상황에서 다른 정보는 무시하고 자신에게 선별적으로 각인된 정보만 활용하는 ‘하나의 단서에 근거한 휴리스틱’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도씨유가 다른 기름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은 소비자가 포도씨유만을 구매한다거나, 해외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친구들이 있는 금융소비자가 해외 펀드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판매원이 추천하는 상품이라면 “그럭저럭 쓸만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만족하면서 선택하는 것이 ‘만족화 휴리스틱’이다. 금융소비자는 은행 직원이 요새 잘나가는 상품이라고 추천할 때 선뜻 가입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휴리스틱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차선책’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불필요한 정보를 무시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도구’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휴리스틱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일상적인 소비 의사결정과 달리 금융상품 관련 의사결정은 자주 하지 않는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휴리스틱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금융소비자로서 어떤 휴리스틱을 사용하는지를 신중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