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준 교보증권 대표
직원들과 술 대신 차 회식 즐겨
보이차는 교보증권의 문화
사내 보이차 동아리도 생겨
김 대표가 보이차를 처음 접한 건 20여년 전. 불교도인 김 대표는 녹차를 즐기다 한 승려의 소개로 중국 윈난이 원산지인 보이차를 알게 됐다. 홍콩과 대만을 매년 수차례 방문해 노차(老茶·오랜 시간 발효된 보이차)를 수집할 만큼 심취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보이차는 ‘자본주의 사치품’으로 낙인 찍혀 홍콩과 대만에 유통시장이 형성됐습니다.”
김 대표가 그동안 사들인 보이차는 수십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인들이 보이차를 다시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수만원, 수십만원 하던 병차 한 개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로 올라 중국으로 다시 팔리는 ‘귀한 몸’이 됐다는 게 김 대표의 귀띔이다. 찻잎의 외향과 배합 비율, 발효 정도에 따라 맛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와인처럼 ‘빈티지(생산연도)와 생산지’가 좋은 노차는 부르는 게 값이다. 전국 곳곳의 차 전문점을 다니고, 전문가 경지에 올라서다 보니 업계 상인들이 좋은 차가 들어오면 김 대표를 초대해 품평을 부탁할 정도다.
“스트레스가 많은 증권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차 마시는 순간만이라도 심신을 편안히 할 수 있다는 게 최고 장점 아닐까요.” 김 대표는 보이차를 마시다 보니 증권맨에게 흔한 심혈관 및 대사 질환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술을 마시는 회식 대신 서울 견지동 단골 차 전문점에 직원을 모아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6월 대표에 오른 이후 4연임에 성공, 햇수로 9년간 대표를 맡고 있는 김 대표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과 함께 증권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김 대표는 미술과 와인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맨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대리 때부터 고액자산가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보이차는 개인 취미 수준을 넘어 교보증권의 문화가 됐다. 임원 대부분이 김 대표의 영향으로 사무실에 차판과 병차를 보유하고 있고,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사내 보이차 동아리가 생겼다. 작년 교보에서 회사를 옮긴 최석종 KTB증권 대표도 김 대표의 소개로 보이차 맛을 알게 된 업계 인물로 꼽힌다. 김 대표는 직원이 좋아하는 차를 기억해 뒀다가 다음번 만남에서 같은 차를 내주는 섬세함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