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오컴의 면도날 vs 히캄의 격언
초년병 시절 기사작성 교육을 받을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것이 경제성의 원칙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동어반복은 금물이란 것이다. 기사와 달리 논문이나 판결문은 대개 지루하다. 글에 경제성의 원칙이 배제된 탓이다. 일전에 본 어떤 논문은 모든 술어가 ‘~로 사료된다’로 일관해 기겁한 적이 있다.

경제성의 원칙은 오랜 기간 축적된 인류의 경험법칙(휴리스틱)이다. 사람의 말과 행동, 생각에 자연스레 밴 경제원리다. 예컨대 빨리 가려면 굽은 길보다 곧은 길을 택하는 것과 같다. 경제성의 원칙을 논리적 추론에 적용한 것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다. ‘사고 절약(parsimony)의 원칙’ ‘단순성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오컴의 면도날 vs 히캄의 격언
오컴의 면도날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즉 ‘단순한 것이 최고(Simple is the best)’란 얘기다. 이 용어는 중세 프란체스코회 수사이자 철학자인 영국 오컴 출신 윌리엄(William of Occam, 1285~1349)의 신학 논리 전개방식에서 유래했다. 면도날은 불필요한 가설을 잘라버린다는 비유다. 쾌도난마,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통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근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됐다. 천동설에 따라 지구를 중심에 놓으면 금성 화성 등의 움직임이 오락가락하는 모순으로 가설에 가설이 붙어 복잡해졌다. 이에 코페르니쿠스가 발상을 뒤집어 지구가 돈다고 가정하니 명쾌하게 설명이 됐다. 오컴의 면도날은 영국 경험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작 뉴턴은 “진실은 단순함 속에 있지 복잡함이나 혼란 속에 있지 않다”고 했고, 프리드리히 실러도 “단순함은 성숙의 결과”라고 갈파했다.

오컴의 면도날은 가설을 정리하는 추론방식이지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잣대는 아니다. 이를 진위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 치명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진실은 대개 단순한 반면 거짓말을 하려면 아주 복잡해진다. 그러나 선동과 낙인찍기도 한마디면 충분한데 해명하려면 구구절절 복잡하기 짝이 없다. ‘주홍글씨’도 가슴팍에 A자 하나면 그만이었다.

이와 상반된 개념이 ‘히캄의 격언(Hickam’s dictum)’이다. 1950년대 미국 의사 존 히캄은 “환자들은 가질 수 있는 모든 질병을 가질 수 있다”며 모든 경우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환자 진단에도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하면 필히 오진으로 귀결될 것이다.

최선의 추론방식은 셜록 홈스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는 사건 초기에 히캄의 격언에 입각해 증거를 수집하지만 해결단계에선 오컴의 면도날처럼 추리의 곁가지를 쳐나갔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