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신어(新語)는 신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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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국립국어원은 이번 신조어 책자 발간과 관련하여 일련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 2007년 10월12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평소와 다른 공지문이 하나 올라왔다. 발단은 그 유명한 ‘놈현스럽다’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네티즌은 우리말 접미사 ‘-스럽다’에 주목했다. 시작은 ‘검사스럽다’였다. 출범 초 대통령과 검사들 간 대화를 보고 네티즌이 만든 말이었다. 논리도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며 윗사람에게 덤비는 행태를 비꼬았다. 곧이어 ‘부시스럽다’ ‘놈현스럽다’가 탄생했다. ‘부시스럽다’는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놈현스럽다’는 우리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생겨났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다’란 뜻이다. 의미상으론 ‘치사하다, 뒤통수치다’란 말과 비슷하지만 좀 더 강렬한 어감을 담고 있다. 모두 그해 국립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 수록된 말이다.
문제는 2007년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를 책으로 발간하면서 불거졌다. 여기엔 2002~2006년 나온 신조어 3500여개를 수록했다. 당연히 ‘놈현스럽다’도 포함됐다. 그러자 청와대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결국 국어원에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지경까지 갔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태는 ‘분서갱유 논란’으로 이어졌다. 당시 한나라당 J의원은 “청와대 반발에 국립국어원이 사과문까지 게재한 것을 보면서 ‘분서갱유 시대’를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고 질타했다.
매년 이맘때면 국립국어원은 전년도에 새로 나온 조어 등 신어자료집을 마무리하느라 부산하다. 하지만 일반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어자료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연구 목적 외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신어는 우리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표준어로 인정된 말은 아니다. ‘언어의 시장’에서 적어도 10여년에 걸쳐 검증받아야 비로소 사전에 오를 수 있다. 자료집에 수록된 말은 말 그대로 자료일 뿐이다. 국어원이 신어를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게끔 ‘언중(言衆)의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칫 ‘한글 한류’의 길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네티즌은 우리말 접미사 ‘-스럽다’에 주목했다. 시작은 ‘검사스럽다’였다. 출범 초 대통령과 검사들 간 대화를 보고 네티즌이 만든 말이었다. 논리도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며 윗사람에게 덤비는 행태를 비꼬았다. 곧이어 ‘부시스럽다’ ‘놈현스럽다’가 탄생했다. ‘부시스럽다’는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놈현스럽다’는 우리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생겨났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다’란 뜻이다. 의미상으론 ‘치사하다, 뒤통수치다’란 말과 비슷하지만 좀 더 강렬한 어감을 담고 있다. 모두 그해 국립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 수록된 말이다.
문제는 2007년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를 책으로 발간하면서 불거졌다. 여기엔 2002~2006년 나온 신조어 3500여개를 수록했다. 당연히 ‘놈현스럽다’도 포함됐다. 그러자 청와대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결국 국어원에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지경까지 갔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태는 ‘분서갱유 논란’으로 이어졌다. 당시 한나라당 J의원은 “청와대 반발에 국립국어원이 사과문까지 게재한 것을 보면서 ‘분서갱유 시대’를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고 질타했다.
매년 이맘때면 국립국어원은 전년도에 새로 나온 조어 등 신어자료집을 마무리하느라 부산하다. 하지만 일반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어자료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연구 목적 외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신어는 우리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표준어로 인정된 말은 아니다. ‘언어의 시장’에서 적어도 10여년에 걸쳐 검증받아야 비로소 사전에 오를 수 있다. 자료집에 수록된 말은 말 그대로 자료일 뿐이다. 국어원이 신어를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게끔 ‘언중(言衆)의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칫 ‘한글 한류’의 길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