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부모와 조부모의 차이
지금 막 돌을 지난 외손주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지난 한 해 동안의 큰 낙이었다. 페이스북에 ‘외손주에게 배웁니다’라는 시리즈물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는데 벌써 60여개의 사연이 모였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쁨이지만, 천진난만하게 자라는 모습에서 어른들이 배울 점이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 1000번을 실패하고도 꾸준히 도전해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또 기어이 걷고야 마는 모습에서 오히려 작심삼일의 어른들이 배우게 된다.

아이 키우는 방식에서 부모와 조부모 간 철학의 차이도 발견한다. 손주의 온갖 요구를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받아주는 조부모의 행태를 보며 자식들은 아이 버릇 망친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가장 큰 마음은 책임감이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켜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의욕에 불탄다. 몇 시가 되면 취침해야 하고, 이때쯤이면 이런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열심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조부모는 물러터진 방식으로 아이 돌보는 것을 탓하는 자식을 겉으로는 야단치지 못한다. 다만 ‘나도 너를 그렇게 키우려고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 ‘인생의 진실을 시간이 지나면 너도 알게 될 것’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위안을 삼는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다. 아직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남의 눈치를 보면서 욕망을 자제하지도 않고,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따라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억지가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로 봤다. 최근에 읽은 《인간이 그린 무늬》(최진석 저)에서도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원래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인간이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가 커가면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욕망을 억제하는 것을 배우고, 다시 나이가 들면서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 거리보다는 조부모와 손주의 거리가 더 가까운 걸까?

우리의 삶에 참된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욕망의 본질을 바라보고, 그것에 충실한 순간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에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 가는가’를 생각해 본다. 새해에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을 향해 눈을 돌려 보자.

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