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서 대기업을 겨냥한 재벌개혁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선서하는 모습.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0대 국회에서 대기업을 겨냥한 재벌개혁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선서하는 모습.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삼성물산 방지법’ ‘이재용 배상법’.

야당 국회의원들이 최근 발의한 기업 관련 주요 법안의 별칭이다. 대기업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자사주 취득·처분을 규제하는 등의 법안이 하나같이 삼성그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은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과 사업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상황에서 국회까지 새해 벽두부터 삼성을 정조준하고 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자사주 규제…삼성 '손발' 묶는 법안 쏟아져
◆삼성생명·화재, 삼성전자 의결권 차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삼성물산 합병 방지법’으로 불린다.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시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화재가 삼성물산 보유 지분(4.79%)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법안 발의 배경으로 들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원칙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합병 또는 영업 양도 시엔 예외적으로 의결권이 인정된다.

박 의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이런 예외를 활용해 이 부회장이 편법으로 그룹 지배력을 높였다고 주장한다.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예외 조항을 줄여 재벌 총수의 편법 승계를 막겠다는 것이 법안을 발의한 의도다.

이 법안은 삼성의 추가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계열사를 합병하거나 영업 부문 일부를 계열사에 양도할 때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 중인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 의원은 대기업 계열사가 분할 또는 분할합병 시 배정받은 신주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내놓았다. 현행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을 할 경우 자사주에 배정된 신주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제윤경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을 할 때 아예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사주에 배정한 신주에 세금을 부과하도록 한 법인세법 개정안도 나와 있다.

이들 법안의 사정권에도 삼성이 들어간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예고했다는 점에서다. 현대중공업, 매일유업, 오리온 등 인적분할을 예고한 다른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금융 계열사 보유 주식과 자사주 의결권을 제한하면 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도 함께 논의해야 균형이 맞다”고 지적했다.

◆재벌 총수 집행유예·사면 금지

재벌 총수를 겨냥한 법안도 잇따르고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이른바 ‘이재용 배상법’을 발의했다. 국민연금기금 관리 및 운용에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손해를 끼친 경우 형사처벌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여준 반면, 34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어 연금 가입자들에게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이 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재벌 총수의 횡령·배임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횡령·배임으로 얻은 이득액이 100억원 이상인 경우 형량을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으로 높여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박 의원은 10억원 이상 탈세에 대해서도 최소 형량을 무기 또는 징역 7년 이상으로 높인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함께 내놓았다. 박 의원은 이들 법안에 ‘유전유죄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재벌 총수와 고위 임원 등은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을 수 없고 특별사면에 대해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