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엑스포츠 제공
박태환. 엑스포츠 제공
지난 16일 대한체육회는 '박태환 이중처벌' 논란을 낳았던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했다. 박태환은 금지약물 복용에 따른 징계가 만료된 이후에도 '도핑에 적발된 선수는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오간 끝에 리우올림픽에 출전했다. 훈련에 집중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예선 탈락했다.

이에 대해 한 에이전트는 "박태환 곁에 전문성을 갖춘 에이전트가 있었다면 금지약물 사태는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좀 더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이 가족 운영 에이전트사에 속해 있어 체계화된 위기 대응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에이전트의 역할은 다양하다. 선수의 계약을 대리하는 것부터 편의를 봐주거나 부상을 관리해 주고, 부당한 일에서 보호해주는 것까지 에이전트의 업무다. 폭넓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형 에이전트사들은 법률, 회계 등 다양한 선수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프로축구(K리그)를 제외하면 한국 스포츠엔 공식적으로 에이전트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록이나 허가가 없기 때문에 에이전트라고 말하고 다니면 그 순간부터 에이전트가 되는 생태계인 것이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한경DB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한경DB
◆ 김종이 시작하고 김종이 끝내고

정부는 당초 올해 상반기까지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위한 운영지침과 우수 에이전트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종 전 문화체육부 제2차관 구속 이후 사업 자체가 표류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차관은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장애인 펜싱팀을 만들도록 지시한 뒤 '비선실세' 최순실 씨 소유로 알려진 더블루K를 에이전트 업체로 이용하도록 하는 등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최 씨에게 이익을 안기기 위해 에이전트 사업을 추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 김 전 차관은 에이전트 제도를 스포츠산업의 정점에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강조해 왔다. 그는 "스포츠산업 활성화는 돈 버는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고 그 첫 번째가 에이전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도 도입을 위해 연구 용역까지 마친 문체부는 당황스러운 눈치다.

문체부 관계자는 "힘을 받아도 모자란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제도의 방향에 대한 내부적 논의도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제화는 어렵다"며 "프로스포츠에 한해 연맹별 자율 채택을 도울 수 있는 방향이 될 듯하다"고 덧붙였다.

◆ '자율' 맡기니 하세월

K리그는 프로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중개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5년부터 공인 에이전트 제도를 폐지함에 따라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 본질은 같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중개인만 활동할 수 있다.

반면 프로농구(KBL)와 프로배구(KOVO)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거나 근거 규정이 없는 상태다. 외국인 선수에 한해서만 에이전트 활동을 인정한다. 가장 시장이 큰 프로야구(KBO리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지만 세부 조율은 마치지 못했다.

에이전트를 제도권 밖에 두다 보니 피해는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지난해 KBO리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승부조작 사태 이면엔 에이전트를 사칭하고 선수에게 접근한 브로커들이 있었다. 에이전트 자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가 존재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선수와의 친분만으로 에이전트 활동 중인 '아는 형님'부터 계약을 족쇄로 선수 관리보다 선수를 통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만 집중하는 에이전트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에이전트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며 "제도화 된다면 시장에서 낙오될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제도 미비는 에이전트들의 피해를 낳기도 한다. 장달영 법무법인 에이펙스 변호사는 선수들이 '뜨고 나면' 에이전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들이 불안정한 법률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장 변호사는 "선수가 계약을 부당하게 파기할 경우 에이전트는 계약 기간 동안 예상했던 보수를 잃게 돼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며 "제도화를 통해 선수의 권익은 물론 에이전트의 수익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