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공권력의 정의 독점, '심판의 오류'
공권력의 위임 집행인, 즉 공직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다. ‘국가와 정부는 정의, 공권력은 언제나 선(善)’이라는 오해다. 스포츠 선수와 심판의 역할 차이에서 빚어지는 인식의 오류 같은 것이다. 현상만 보면 선수들이 주로 파울을 한다. 열심히 뛸수록 규칙 위반의 개연성도 높아진다. 이를 찾아내 제재하고 벌도 주는 게 심판에게 분담된 기능이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잠재적 범법자처럼 비쳐지고 심판은 응징자라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이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관념이 된다. 깊은 자기성찰이 없으면 심판은 스스로가 정의의 사도인 양 오인하게 된다.

단지 건수로만 본다면 선수 쪽의 반칙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를 더 크게 망칠 위험은 오히려 심판 쪽에 있다. 진짜 파울은 못 보는 무능, 교묘한 편 들기, 의도적인 특정 선수 죽이기는 명백한 불의다. 이런 거악은 스포츠의 기반 자체를 뒤흔든다. 이를 ‘법규 독점의 오류’ 혹은 ‘심판의 오류’라고 해보자. 국가에 적용하면 ‘정부의 정의독점 착각’이나 ‘공권력의 독선 오류’가 된다. 경계할 일이다.

정의도, 선도 정부 독점물 아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곳에서 국가나 정부의 이름으로 불의가 자행됐고, 공권력이 악도 행했다. 킬링 필드의 크메르루주만이 아니다. ‘김 왕조’ 북한도 극단적 사례다. 과거에, 아니 지금까지 특정 지대의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진정한 법치가 안 되면 그렇게 된다. 설사 법률체계가 그럴듯해도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회는 그렇게 된다.

종횡무진하는 특검을 보면서 공권력의 독선 오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헌법정신에 맞지 않게 급조된 특검법도 마냥 정의요, 그런 공권력도 그 자체로 선이라는 위헌적, 반(反)자유적 맹목성이 엿보인다. 태생에 문제가 있는 공권력의 폭력성은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위선의 사회로 빠져들까 그게 더 두렵다. 류철균 교수에게 수갑을 채운 일도 그렇다. 축구 빙상 체조 등 대학에 적을 두면서 이런저런 메달 하나라도 딴 선수 중 누가 제대로 출석하고, 시험을 치며 학사일정을 이행했을까. 해외에서 뛰는 어느 동포 골프 스타는 엄연히 유명 사립대 심리학과생이다. 그가 수업 듣고 과제물 내며 시험 봐서 졸업한다고 우리 중 누가 믿나. 메달에나 광분해온 한국 스포츠계의 민낯이요, 기껏 스타 선수 유치에 목숨 거는 한국 대학의 후진적 전통이다.

종횡무진 특검의 중대 위험 '독선'

이런 판에 승마특기생 정유라만 떼어내서 학점 특혜를 줬다며 다섯 가지 죄목으로 교수를 수갑 채운 게 과연 정의의 구현인가. 이로써 한국의 대학 스포츠는 혁신될까. 그게 아니라면 공권력의 독선일 뿐이다. 정유라의 부정입학 규명과는 또 다른, 광장의 처형이다. 공권력은 그 자체로 정의요, 무조건 선이라는 맹신 없이는 불가한 일이 문명국가에서 빚어진다.

특검의 대기업 수사도 마찬가지다. 최순실게이트 특검이, 대통령 탄핵소추를 밝힌다는 특검이 ‘재벌 타도 수사’라는 변종 플레이로 승부를 내겠다는 것 같다. 정의를, 그것도 시류적 정의를 독점하려는 것은 특검만의 오류도 아니다. 특검도 헌법재판소도 당장 광장의 인파부터 의식하지 않는 게 좋겠다. 촛불그룹도 태극기행렬도 배제한 채 헌법의 조항들을 다시 보면서 오로지 실정법만 좇아가야 한다. 특검이 정의를 크게 외치고, 특검 수사야말로 선이라며 심판의 오류에 빠지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는 완전 퇴행이다. 법 기술자들의 파죽지세가 걱정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