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번먼트삭스(Government Sachs·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와 골드만삭스를 합친 용어)’가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내각과 백악관에 월가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 여섯 명이 포진한다. 차기 미국 정부를 사실상 골드만삭스가 접수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조지 W 부시 정부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과 재무부 장·차관직을 동시에 차지한 이후 8년 만에 ‘골드만삭스 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막 오른 트럼프 시대] '골드만 사단' 6명이 트럼프노믹스 좌지우지…'거번먼트삭스'의 귀환
8년간의 공백 딛고 내각과 백악관 장악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해 선거운동 기간 중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월가의 앞잡이’라고 비판했다. 그중 골드만삭스를 월가 기득권의 대표로 지목하며 강력한 개혁을 약속했다. 클린턴 후보가 2013년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행사에서 세 번의 연설로 강연료 67만달러를 챙긴 사실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그러나 대선 후 첫 인선부터 골드만삭스 출신을 등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백악관 선임고문 겸 수석전략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된 스티브 배넌을 비롯해 트럼프노믹스(트럼프 당선자의 경제정책)를 실질적으로 총괄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내정자와 대통령의 경제정책 전반을 조율할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내정자가 모두 골드만삭스 패밀리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로버트 루빈(클린턴 정부), 헨리 폴슨(조지 W 부시 정부)에 이어 세 번째 재무장관을 배출하게 됐다. ‘월가의 경찰’로 불리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도 골드만삭스를 대리한 로펌 출신 변호사 제이 클레이턴이 지명됐다.

트럼프 당선자의 골드만삭스 편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제담당 선임고문으로 디나 파월 골드만삭스재단 이사장을 지명했다. 파월은 기업가정신 고취와 중소기업 성장,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임무를 받았다. 현지 언론들은 파월이 트럼프 당선자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맡는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에 빗댄 ‘거번먼트삭스’의 정점엔 앤서니 스카라무치 스카이브리지캐피털 회장이 오를 전망이다. 골드만삭스 매니저 출신인 그는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의 선거자금을 총괄한 최측근 인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그가 백악관 선임고문 이상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관계 조율에서부터 주(州)정부 및 기업을 상대로 한 현안 협의 등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포진이 확정되면 골드만삭스 출신들은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에서부터 정치전략, 대외관계를 모두 손에 쥐고 흔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월가에 대한 구제금융을 초래했다는 비판과 함께 8년간 ‘정치적 광야’를 떠돌던 골드만삭스가 완벽하게 워싱턴 정가로 복귀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역대 미국 정부의 ‘인재 파이프라인’

골드만삭스가 미 정부의 ‘인재 파이프라인’ 역할을 담당한 전통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스터 월스트리트’로 불리던 시드니 와인버그 골드만삭스 회장이 전쟁군수품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와인버그는 193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월가의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며 이후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대통령도 자문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존 화이트헤드 공동회장이 38년간의 골드만삭스 생활을 마치고 국무부 차관으로 영입됐다. 1994년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골드만삭스 회장을 지낸 로버트 루빈이 재무장관으로 영입됐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다섯 명의 골드만삭스 출신을 대거 영입해 요직에 앉혔다. 2002년 스티븐 프리드먼 공동회장이 경제수석보좌관으로 발탁됐으며, 2006년에는 골드만삭스에서 법률과 대관업무를 담당한 조슈아 볼턴이 백악관 예산국장을 거쳐 비서실장까지 꿰찼다. 같은 해 3월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헨리 폴슨이 재무장관에, 9월에는 로버트 스틸 선임이사가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백악관과 재무부를 사실상 장악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상품선물위원회(CFTC) 위원장을 맡았던 게리 겐슬러 역시 골드만삭스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금융부문 대표를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을 경우 재무장관을 맡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은 미 정부와 백악관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구성하는 열두 명의 지역연방은행 총재 중 네 명이 골드만삭스와 연결돼 있다. WSJ는 FOMC 위원의 배경은 Fed 이사회를 거친 학자 출신이거나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한 인사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분석했다.

‘리틀 Fed’로 불리는 뉴욕연방은행의 윌리엄 더들리 총재는 21년간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한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이다. 2015년 8월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로 선임된 로버트 캐플런은 골드만삭스 부회장을 지냈다. 같은 해 11월 미니애폴리스연방은행 총재로 임명된 닐 카시카리도 골드만삭스가 첫 직장이었다. 2015년 3월 임명된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총재 역시 골드만삭스에서 파트너로 근무했다.

■ 60억달러

미국 월가를 대표하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2015년 기준 순이익. 매출은 338억달러를 기록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골드만삭스 주가를 반영한 시가총액은 987억달러에 달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